베네딕트의 모범적 신앙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만도 1과 } 로마서 10장 14-17절 ….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에게 어떻게 간청할 수 있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가 있습니까? [15] 파견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습니까? 이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를, “기쁜 소식을 알리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도 말하기를, “주님, 저희가 전파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라고 했습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 구약 } 이사야 6장 5-8절 …. [5] 내가 말했다. “큰일이 났도다. 나는 이제 파멸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6] 그러자 한 천사가 제단에서 타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 [ 7] 내 입에 대고 말했다. “자,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죄는 없어지고 너의 죄악은 사라졌다.” [8] 그때 나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해 가려는가?” 내가 아뢰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 ~~~~~

<( 말씀 묵상 )> 오늘 세계교회가 기념하는 베네딕트(Benedict, 480 ? – 547 ?)는 주후 제6세기 이탈리아의 수도자로서, 기독교의 수도원운동의 태두 격이 되는 이였습니다.

그는 이른 나이부터 수도자가 될 결심을 가지고 로마로 가서 교육을 받았지만, 당시 수도원의 학풍이 다분히 세속적이어서 수도원답지 못한 점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는 마음에 깊이 개탄을 하고, 20세 즈음에 수비아코(로마의 동쪽 70키로 가량 떨어져 있는 해발 4백 미터 정도의 산세가 험한 지역) 지방의 자연동굴에 들어가 은둔자로 기도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동료 수도자였던 로마누스가 때때로 새끼줄로 묶어 동굴로 내려주는 음식으로 연명을 하며 수도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한 양치는 목동이 그리로 지나가다가 동굴 속에 있는 베네딕트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목동은 그의 외모를 보면서 기겁하여 놀랐으나, 그가 예사로운 사람이 아닌 줄을 알고 엎드려 경배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 뒤, 베네딕트의 덕품이 널리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그 무렵 인근에 있는 비코바로수도원의 원장이 세상을 떠나, 그 수도원의 수사들이 베네딕트에게 원장이 되어 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베네딕트는 굴에서 나와, 510년 경에 비코바로수도원의 원장이 되었습니다. 베네딕트 수도원장의 지침은 대단히 간단했습니다. 즉 수도자는 너무 책임감에 긴장해 있어도 안 좋고, 너무 해이해서 게으름을 피워도 안 좋다. 마음 중심에 ‘예수님의 생애를 닮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만을 확실하게 품고 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베네딕트 자신은 늘 매일 일곱 번의 기도시간을 엄격히 지켰고 성경연구와 노동에 앞장섰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하는 수도자들에게는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 몇 사람이 베네딕트를 독살하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이를 눈치챈 베네딕트는 수도원을 떠나, 다시 옛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다른 수도자들은 수시로 동굴로 그를 찾아와서 수도원의 수도생활을 위하여 의견을 구하곤 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수의 수도자들이 공동체를 이루는 것보다, 12인이 한 수도단을 이루는 제도를 창안하게 되었습니다.

수비아코에 열두 곳에 이러한 수도단들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150여 명의 수도자가 그의 수하에서 지도를 받게 되자, 그의 명성과 지도력은 모든 성직자들을 능가하게 되었고, 이로써 많은 사람들의 질투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잘못된 현상임을 깨달은 그는 수비아코를 떠날 계획을 세웠는데, 마침 몬테카시노에 있던 옛 아폴로신전을 기독교의 회당으로 삼아 수도원을 설립할 가능성을 제안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엄격한 규율을 작성하여, 529년에 그곳에 수도원을 설립하였는데, 몬테카시노 수도원은 머지않아 많은 수의 수도자들이 모여들어 크게 발전했습니다. 심지어 동고트족의 왕 토틸라까지도 그를 예방한 적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베네딕트의 가르침 가운데, ‘노동은 기도요, 기도는 노동이다’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수도자의 모든 노동(자영농장의 노동, 공동체 생활을 위한 노동, 복음전파를 위한 노동 등)은 그 자체가 몸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베네딕트는, 수도생활을, 어떤 특별한 영적 체험을 구하는 것으로 오인하지 말라고 하면서, 매일의 작은 충실한 생활이 가장 훌륭한 수도생활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수도자들에게 성경필사, 고전 문헌 연구, 어린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학교 운영, 농업기술의 보급, 병자들을 돌보는 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제활동 등은 수도원이 수행할 수 있는 보람된 일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늘 평화롭고 온화한 성품이었으며, 자발적 실천을 중요시했습니다. 임종이 다가온 것을 알고, 그는 수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감사성찬례를 드리고 영성체를 한 후, 그 자리에서 선채로 운명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범적인 삶으로 온 생애를 하나님께 봉헌한 베네딕트는 온 세상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삶의 모본을 보였습니다.

~~~~~ ~~~~~

<기도> 주 하나님, 온 세상을 창조하신 높고 초월적인 하나님을 저희의 천주로 삼고 평생을 사는 동안, 저희에게 무슨 기이한 표적으로 접근해 주시지 않을지라도, 주님이 저희 인생의 주인이시요, 더할나위없이 자상하신 아버지를 인격적으로 공경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