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복음 } 마태오 복음서 10장 34-39절 ….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35] 나는 아들은 아버지와 맞서고 딸은 어머니와, 며느리는 시어머니와서로 맞서게 하려고 왔다. [36] 집안 식구가 바로 자기 원수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39]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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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지금도 광화문 거리에 나가면, 6.25전쟁 때의 처참한 정경을 찍었던 사진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어서, 제 어렸을 적의 기억을 새로이 반추하게 만듭니다.
거기 전시된 사진 속에 어린이들의 모습도 나오는데 그때 제 나이가 여덟 살이었으니까, 제 또래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때의 제 생각이 무엇이었나를 회상하려고 한참을 들여다 봅니다.
파괴된 철교 위로 위험을 무릅쓰고, 비툴어진 교각을 타고 피난민들이 곡예사들처럼 피난을 하고 있는 유명한 사진도 있었습니다.
저는 교각을 타진 않았지만, 대동강 능라도 북쪽에 유엔군 공병부대가 가설한 부교(물에 띄운 다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유엔군 탱크나 장갑차가 후퇴하려고 만든 것인데, 저희 가족은 그 육중한 탱크들 사이에 숨어서 대동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뻔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아슬아슬한 위기들을 잘 넘기고, 자유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어서 오늘까지 살았습니다.
저는 ‘목사의 아들’이라는 이름 때문에 평양에서 소위 ‘인민학교’를 다니며 제도적으로 벌써 차별을 받고 있었는데, 아마도 피난 나오지 못했더라면, 북한에서 지금껏 살아남으려면, 목사인 아버지와 독하게 맞장을 떴던가, 아니면 아버지와 순교의 운명을 함께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려서부터 저의 정체성이 ‘반공’, ‘자유 민주주의’였고, ‘친미’였으며, ‘골수 기독교’였습니다.
제 할머니가 1927년에 유교의 제사전통을 등진 이후부터 시작된 ‘엑소더스’(출애굽)는, 아버지가 목사 생활을 하게 된 이후로 불변의 ‘반공 기독교 집안’이 되었기 때문에, 만약 불행하게도 한반도가 모두 공산화되는 날에는 저희 집안은 모두 ‘반동분자의 가계’로 지목되어 숙청 제1호가 될 것입니다.
더구나 제 아내의 친정이 경문(방첩 분야)에 종사한 집안이고, 제 사돈 역시 경문 출신이어서, 제가 뭐라고 변명을 붙여 발을 빼고 싶어도(물론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겠지만), 아무도 제가 ‘반미, 반기독교, 반자유민주주의 노선’이라고 믿어 줄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오늘 본문에 끔찍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나는, 아들은 아버지와 맞서고 딸은 어머니와,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서로 맞서게 하려고 왔다.”(본문 34-35절) 무슨 결투를 주선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처럼 말씀을 하십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지요.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구원의 복음은 그냥 조용히 은은하게 퍼질 수 없고, 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것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목숨을 건 사투가 곳곳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제 부모는 모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제가 부모님을 등질 일은 없지요. 세상이 바뀌어, 제 아들 딸이 제게 복음을 버리라는 엉뚱한 요구를 한다 하더라도(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지만 혹시 있더라도), 제가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없는 이유는, 제게 더 중요한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도, 제 자녀와 손자녀들을 모두 포함해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창조주 하느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내리셔서 큰 고통을 치르시고, 구원의 길을 인류에게 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저와 여러분이 왕으로 받들고 있는데, 왜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라는 말을 듣겠습니까? 온 세상이 나를 향해 엄포를 놓는다 해도 저는 변절을 할 수가 없습니다. 능라도 부교를 건너면서 이미 작정된 저의 정체성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저는 여호수아서 24장 15절을 읽을 때면 온 몸이 떨립니다. “그러나 나와 내 집은 야훼를 섬기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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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느님, 제 삶을 통해 저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고 지금껏 저의 한 분 주님이 되신 하느님을 제가 떠날 수가 없고, 주님께서 저를 떠나실 분이 아니심을 믿습니다. 이 믿음의 정체성을 잃지 말게 하옵시며, 영원한 나라에 이르도록 친히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