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복음 } 마태오 복음서 11장 28-30절 ….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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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 1 )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세 개의 절은 요절로서 누구나 익히 아는 성구입니다. 28절에서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가볍고도 고마운 마음으로 쉽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 다음, 29절의 말씀 “ …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이 말씀에 우리는 주춤합니다. 아니, 쉬게 해 주신다던 주님께서 ‘내 멍에’를 메라시니!? 주님께서 메신 멍에는 흉악하기 그지없는 십자가가 아니었던가,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문맥을 분명히 알기 위해서 30절까지 읽게 됩니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어떻게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가 편하고 가벼운 것일 수가 있느냔 말입니다.
거기까지 읽고나서는 누구나, ‘아, 이것은 쉬운 구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당하던 불가피한 멍에들이 있었습니다. 1) 율법의 멍에, 2) 율법주의자들이 만들어놓은 부가적 실천조항들, 3) 자신의 범법과 나태로 인한 죄의 짐, 4) 고달픈 인생살이에서 오는 수고들, 5) 이방 제국주의자들의 침탈로 인한 매일의 고통, 6)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지 못한다는 좌절감 등을 들 수 있습니다.
2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또 어떻습니까? 아무리 과학문명이 최고조에 달했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도 피할 수 없는 멍에들이 있습니다. 1) 이념주의자들의 지배, 2) 교묘한 자유의 제한, 3) 오염된 환경으로부터의 보복적 대가, 4) 결코 밝지 않은 미래 예측, 5) 현실주의, 세속주의, 실용주의의 만연 등등이 있습니다.
( 2 )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29절) 하셨는데, 이것은 분명히 육신의 평안을 약속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평탄치 않았습니다. 복음전파를 위하여 온갖 수고를 한 끝에, 사도 요한을 제외하고, 모두가 최고로 고통스럽게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택하신 분들에게는 오늘도 순교의 은총을 주시지만,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다만 ‘가장 쉽고도 편한’ 멍에를 메워 주셨습니다. 그 멍에를 저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과제를 안은 멍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가) 의롭게 살아야 하는 멍에 : 세상의 온갖 불의를, 책벌과 척결의 방법이 아니고, 족장 요셉이 형제들에게 행한 용서처럼, 용서의 방식으로 의를 드러내며 사는 것이,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메워주신 ‘의’의 멍에라고 봅니다.
나) 긍휼을 베풀어야 하는 멍에 : 세상사람들은 가난, 무지, 병고, 차별, 법적 제약, 장애, 사고 당함, 등등을 으레 자신이 책임져야 할 고통이라고 여기지만,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우리가 함께 극복해야 할 어려움으로 인식하는 것이 옳다고 보셨습니다.
다) 겸손한 섬김의 멍에 : 주님께서 제자들과 하직을 예고하시던 저녁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당부하신 ‘겸손한 섬김’의 멍에가 있습니다. 남에게 겸손을 과시하려는 행위 마저도 없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멍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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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느님, 저희가 성령께 순종하여 그의 인도하심을 따르면, 저희도 능히 감당할 만한 멍에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수고의 날들의 끝에서 주님께서 베푸시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