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사람에게만 드러내시는 주님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복음 } 마테오 복음서 11장 25-27절 …. [25] 그때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무리와 슬기롭다는 무리에게는 이런 일을 감추시고 어린 사람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합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기뻐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말고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합니다. 또 아들과,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말고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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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 1 ) 위의 25절에서 “지혜롭다는 무리와 슬기롭다는 무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감추시고” 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어떤 인간들에게는 무엇을 감추신다는 뜻이 아니고,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진리를 보지 못한다’는 뜻으로 읽어야 하겠지요?

사도 바울도 “여러분 가운데 자기가 이 세상에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진실로 지혜롭게 되려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고전 3:18) 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지혜나 지식이 불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라, 지신을 가지고 자만심을 가지다가는, 심지어 하나님의 가르침 마저도 외면-거부하려 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문은, 스스로 높이는 사람들에게는 들어갈 수가 없을 만큼 낮고 좁으며, 스스로 겸비한 사람들에게는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에서 “어린 사람에게는 드러내 보이신다.”(25절) 고 하신 것은, 나이가 어린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토록 하나님께 배우기를 바라서 의욕을 보이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오늘 세계교회가 기념하는 아래의 두 분은 모두 ‘어린 사람’으로 처신하려고 애썼던 인격의 사람들이었습니다.

( 2 ) 영국 윈체스터의 주교 스위선 (Swithun, ? – 862) :

스위선 주교에 관해서는 기록으로 남아 있는 자료가 별로 없습니다. 다만 그가 살던 당시의 영국 브리텐 섬에 ‘웨식스 왕국’이 있었는데, 이 나라에서 그가 정치인으로서도 일했으며, 주교로서도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세상에서 행세하는 지도자로 살기보다 ‘겸손한 목자’로 살기를 바라서, 평생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했고, 병들어 고통 당하는 이들의 친구로 살았습니다.

주교로서 예배에 대한 책임도 지고 있었지만, 정치인으로 사회복지를 위해서 책임있는 자리에서 행정에도 관여했습니다. 그리하여, 웨식스왕국이 기독교국가가 되는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가 유언으로, 자신의 무덤을 교회 안으로 하지 말고, 바깥 사람들이 쉽게 밟고 다니는 곳, 빗물이 떨어지는 곳을 피하지 말고 정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영예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기념일이 7월 15일(스위선의 날, Swithun’s day)인데, 어느 해건 이 날 비가 오면 40일간 비가 내리고, 이 날 맑으면 40일간 맑다는 ‘날씨 속담’까지 생겼습니다.

( 3 ) 보나벤투라 (Bonaventure, 1218 – 1274) :

이탈리아 투스카나 출신인 그가, 어렸을 적에 중병에 걸려 그의 어머니가 아씨시의 프란시스에게 기도를 부탁하러 데리고 갔을 때에, 프란시스가 ‘부오노 벤투라’(‘좋은 운명이로다’)라고 외쳤다 해서 그것이 그의 이름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지성의 거장’이라면, 보나벤투라는 ‘영성의 거장’으로 일컬음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위대한 수도자요, 신학자며, 교회지도자였습니다.

파리대학교에서 공부했는데, 일찍부터 뛰어난 신학자로 인정 받아 곧 교수가 되었습니다.

39세가 되던 1257년, 그는 프란치스코수도회의 총재가 되어, 모든 수도회를 총괄 지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수도자들이 ‘청빈의 수준을 어디까지 낮춰야 옳은가?’, ‘수도자가 학문에 종사하는 것이 옳은가’ 이런 문제들이 수도회의 난문제가 되어 분열 위기에까지 이르렀던 일이 있었습니다.

보나벤투라는 “청빈의 수준은 낮출수록 좋다. 그리고 수도자가 학문에 종사하는 것은, 학문 자체가 하나님께 바치는 헌신이기 때문에, 말릴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수도회의 분열 현상을 해소했다고 전해집니다.

특별히 지금까지 신학 연구에 들어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경구가 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목적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는 시간을 가지지 않고서는 신학을 탐구할 수 없다.”

그는 1274년 오늘 별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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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한 움큼의 지식을 광활한 지식의 바다에서 떠내어 들고서, 무엇을 좀 아는 듯이 오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옵소서. 겸손한 마음으로, 평생 하나님께 가르침을 구하는 마음으로 귀기울이게 하시며, 이로써 저희가 구원의 복음을 깨닫고 전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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