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사람들과, 밤에는 하느님과

<도미닉 사제의 기념일>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구약 } 하바꾹 2장 1-4절 …. [1] “내가 던진 질문에 무슨 말로 대답하실지 내 초소에 버티고 서서 기다려보리라. 눈에 불을 켜고 망대에 서서 기다려보리라.” 하였더니 [2] 야훼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가 받은 말을 누구나 알아보도록 판에 새겨두어라. [3] 네가 본 일은 때가 되면 이루어진다. 끝날은 반드시 찾아온다. 쉬이 오지 않더라도 기다려라. 기어이 오고야 만다. [4] 멋대로 설치지 마라. 나는 그런 사람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 믿음)으로써 살리라.”

{ 복음 } 마태오 복음서 17장 14-20절 …. [14] 그들이 군중에게 돌아오자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무릎을 꿇고 [15] “주님, 제 아들이 간질병으로 몹시 시달리고 있으니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그 아이는 가끔 불 속에 뛰어들기도 하고 물 속에 빠지기도 합니다. [16]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에게 데려가 보았지만 그들은 고치지 못했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17] 예수께서는 “아, 이 세대가 왜 이다지도 믿으려 하지 않고 비뚤어졌을까? 내가 언제까지나 너희와 함께 살며 이 성화를 받아야 한단 말이냐? 그 아이를 나에게 데려오너라.” 하시고는 [18] 마귀에게 호령하시자 마귀는 나가고 아이는 곧 나았다. [19] 사람들이 없을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저희는 왜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0]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져라.’ 해도 그대로 될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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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 1 ) 오늘 세계교회가 기념하는 도미닉 사제(Dominic, 1170 – 1221)는 매일의 일과가, 낮에는 사람들과 하느님의 구원 섭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밤에는 하느님과, 아직 구원에 이르지 못한 이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를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도미닉은 낮에는 신학자로 살았고, 밤에는 수도자로 살았는데, 이것이 그가 설립한 도미니칸 수도회의 규율이 되었습니다. 도미니칸 수도회의 창설 시의 호칭이 ‘도미닉 설교자들의 회’라고 불렀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고, 명실공히 다른 수도단체들에 비해서 신학연구에 깊이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로 중세기 교회의 돌출한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 – 1275) 가 도미니칸 수도회 출신이었습니다.

다만, 이단논쟁을 할 때에는, 그들의 도전을 관념론적으로 맞받아쳐서 논박하기를 바라지 않았고, 조용히 그들과 밤새워 기도하면서, 신앙적인 체험을 공유하는 사이에 그들의 영혼이 하느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이로써 복음 진리에로 회유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좀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이것이 확실히 승리하는 길이었습니다.

( 2 ) 위의 복음 본문(마 17:17)에 보면, 예수님께서 퍽 실망어린 말씀을 하시는 구절이 있습니다. “아, 이 세대가 왜 이다지도 믿으려 하지 않고 비뚤어졌을까? 내가 언제까지나 너희와 함께 살며 이 성화를 받아야 한단 말이냐?” 하십니다. 제자들이 몸 둘 바를 몰랐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마 10:1-8)에서 이미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든 병마를 물리칠 권능을 부여한 바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껏 제자들이 그 권능을 믿음으로 행사할 줄을 몰랐습니다.

더구나 머지않아 예루살렘으로 가서, 십자가 위의 속죄제사를 드림으로 세상을 하직할 날이 가까와오고 있는데, 복음전파의 사역을 후계할 제자들이 아직껏 영적 사역이 미흡한 것에, 초조한 마음이 드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고, 간질병 어린이를 데려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곧 그 어린이를 고쳐 주셨습니다.

저에게는 벌써 수십년 전에 성직 서품을 받을 때, 제 손에 교회가 성령을 통하여 부여하신 축복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축복권을 자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 이 본문을 다시 읽으면서 제게 부여된 이 축복권을 많이 사용할 것을 다짐합니다.

( 3 ) 벌써 오래된 일이지만, 1960년 이래로 사귀고 있는 시인 친구가 있습니다. 그가, 마태복음 17장 20절에서 따와 제 호를 지었다면서 ‘비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날아가는 산’이라는 뜻이랍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져라 해도 그대로 될 것이다.’ 하셨으니, 그 말씀을 증명하는 사람이 되거라 하면서 지어 준 것입니다.

제 생애에 진정 ‘날아가는 산’을 저와 여러분이 보게 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산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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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느님, 저희에게 순종의 믿음을 더하시어, 믿음의 사람으로 굳게 서게 하옵소서. 특별히 도미닉 사제의 믿음을 본받아, 낮에는 사람들과 복음진리를 나누고, 밤에는 하느님과 기도로 소통하는 복된 삶을 살도록 성령으로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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