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사명 – 선교, 치유, 양육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새번역)

{ 복음 } 누가복음서 4장 16-22절 …. [16]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나신 나사렛에 오셔서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는 성경을 읽으려고 일어서서 [17] 예언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건네 받아서, 그것을 펴시어, 이런 말씀이 있는 데를 찾으셨다. [18]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주고, [19]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드는 사람에게 되돌려주시고, 앉으셨다. 회당에 있는 모든 사람의 눈은 예수께로 쏠렸다. [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 [22]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 은혜로운 말씀에 놀라서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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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 1 )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의 공생애를 이제 시작하신다는 선포식이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통상 왕의 즉위식에서 이 본문을 읽었다고 전합니다.

그래서 ‘왕 중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선포예식이야 말로, 모습은 나사렛 마을의 조촐한 모임이었지만, 진실로 장대하고도 엄숙한 메시아 예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예식에서,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나사렛 사람들은 그들의 좁다란 소견으로, ‘나사렛 시골구석에서 무슨 메시아가 나온단 말이냐?’ 하며 흥분했습니다.

‘공연히 큰 소리 치는 것을 방관했다가는, 나사렛 마을 전체가 예루살렘의 권세잡은 사람들에게 밉보여, 아주 박살이 날 수도 있다.’ 라면서, 예수님을 아예 그들의 손으로 처결하려고 덤볐던 것입니다.(눅 4:29-30)

( 2 )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도구로 세워진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받아들이건 안 받아들이건 관계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사렛 마을에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오늘도 세상을 향하여 선포해야 합니다.

그것은 교회의 삼대 사명에 관한 것입니다.

첫째는 복음의 선포입니다. 성령께서 교회 위에 임하시고, 교회는 모든 기회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심을 온 세상에 선포합니다.(본문 18절 참조)

둘째는 치유의 선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질병과 장애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모든 인류로 하여금 질병과 장애에서 해방 받아 온전한 생활을 영위하도록 도우셨습니다.

교회의 치유사역은 ‘사회치유’를 포함합니다. 특별히 사회 속에 그릇된 관습, 우상관습, 미신관습, 차별관습, 곧 남녀, 인종, 빈부, 교육수준, 사회계급, 출신 등의 차별로 인해 억눌리고 극도로 불평등하게 된 사회체제들을 치유합니다.(본문 18하반절)

셋째는 제자의 양육입니다. 교회는 성령 안에서 제자들이 양육됩니다. 각자의 재능과 지닌 여건을 통하여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청지기(제자)의 사역을 하도록 양육하고 파송하며 협력합니다.

( 3 ) 세계교회가 오늘 기념하는 믿음의 선배 두 사람을 소개합니다.

가) 애단 (Aidan, ? – 651 ) : 아일랜드 출신인 애단은 북부 영국을 복음화하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영국선교의 전초기지였던 아이오나 섬에서 수도원의 수사로 있다가, 노덤브리아(Northumbria, 프리텐 섬 중북부) 지방에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그는 도보로 각 지방을 순회하면서, 기존의 신자들을 돌보고, 수없이 전도소를 개설하면서, 날마다 성경을 가르치는 등 다양한 활동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린디스판에 수도원(당시에는 성직자를 배출하는 신학교의 기능을 수행)을 설립하고, 현지인인 영국인 성직자들을 양육하는 일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재정이 궁핍하여 선교활동에 심각한 위협을 항상 받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는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 활동을 그치지 않고 지속했습니다.

651년, 평소에 애단의 선교활동에 퍽 비판적이었던 오스윈 왕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고 애통해 하다가, 그날 저녁에 숨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성격은 온화하고 선량했으며,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항상 끓어올랐습니다. 지식으로 가르치려 하지 않았고, 실천적 모범으로 사람들을 교화했습니다.

나) 존 번연 (John Bunyan,1628 – 1688 ) : 영국 베드포드셔(Bedfordshire)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거의 독학으로 공부를 했으며, 성경을 통해서 글을 익혔습니다.

읽을 책이 별로 없어서, 다른 사람들의 수사학적 재능은 흉내낼 필요를 느끼지 않았고, 그의 경건한 신앙생활에서 우러나온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 이라는 명저를 써서, 영적 세계를 쉽게 해설한 필독의 도서로 후세에 남겼습니다.

이 책에서, 한 기독교인이 어떻게 구원에 이르며, 영적으로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돌파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다다르게 되었던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성경의 대부분의 중요한 용어들을 의인화해서, 모든 세대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동화의 형태로 구술하여, 난해한 신학을 쉽게 해설한 그의 천재성을 보였습니다.

그가 한때 베드포드 감옥에 있을 때에, 이 저서를 썼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니면 그후에 썼는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는 1688년 8월 30일에 60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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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예수님의 메시아로서의 공생애 선포 예식 속에서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의 사명을 다시 깨닫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또한 선교사 애단, 저술가 존 번연의 성업을 기념하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저희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시 한 번 다짐하는 계기가 있도록, 성령님이시여 인도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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