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중심에 있는 십자가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 서신 } 고린토 전서 2장 1-5, 8, 10하-13절 …. [1] 형제 여러분, 내가 여러분을 찾아갔을 때에 나는 유식한 말이나 지혜를 가지고 하느님의 그 심오한 진리를 전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2] 그것은 내가 여러분과 함께 지내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 특히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3] 사실 나는 여러분에게 갔을 때 약하였고 두려워서 몹시 떨었습니다. [4] 그리고 내가 말을 하거나 설교를 할 때에도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을 쓰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의 성령과 그의 능력만을 드러내려고 하였습니다. [5]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에 바탕을 두지 않고 하느님의 능력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 [8] 이 세상 통치자들은 아무도 이 지혜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10] 하느님께서는 그 지혜를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깊은 경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다 통찰하십니다. [11]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 속에 있는 마음만이 알 수 있듯이 하느님의 생각은 하느님의 성령만이 아실 수 있습니다. [12] 우리가 받은 성령은 세상이 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의 선물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13] 우리는 그 은총의 선물을 전하는데 있어서도 인간이 가르쳐주는 지혜로운 말로 하지 않고 성령께서 가르쳐주시는 말씀으로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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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 1 ) 바울로 사도의 선교활동은 사도행전 13장에서 시작됩니다. 거기에 보면, 제1차, 제2차 선교여행에서 전도자 바울로의 화법이 항상 도전적인 것을 봅니다. 왜냐하면 이론적 대결에서 그는 물러남이 없는 저돌성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령 아테네의 아레오파고 법정에서의 바울로의 도전을 봅시다. 그는 아테네 사람들이 세워놓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신전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의 신전인가를 논증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로의 탁견이었습니다. 하지만 아테네 사람들에게 복음의 은총을 받게 하는 것이었을까요?

바울로의 초기의 편지들은 데살로니카 전-후서입니다. 이 두 책에서의 중심주제는 불원간 재림하실 예수님에 관한 선포였습니다. 물론 이것은 예수님의 신실한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방 땅에 나가 살고 있는 유다인들에게나 이방 사람들에게나 하느님의 독생자의 재림이 복음의 주제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바울로의 제2기 편지는 갈라디아서였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중요한 논제가 ‘거짓 복음’이었습니다. 복음을 변질적으로 가르치는 사람들에 대한 논박을 하는 것이 중요한 명제였습니다. 그렇지만 이것 역시 복음의 본질에 뛰어들지 못하는 약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바울로의 제3기 편지들 곧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부터 바울로가 탄식조로 고백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할 따름입니다.”(고전 1:23) 라고 했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기 때문입니다.”(고전 2:2)

십자가에 달리신 하느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추고, 거기서 촌보도 떠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복음의 핵심은 대속의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일 밖에는 아무것도 복음을 대신할 수 없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강단도 바울로의 이 고백 위에서 선포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어느 날의 설교든지, 무슨 본문으로 설교를 했든지, 설교의 귀결은 십자가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십자가로 가지 못한 설교는 미완성의 설교요, 회중들을 향해서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 강단이 있고, 설교 시간이 있고, 사제가 있습니다.

( 2 ) 오늘 세계교회가 기념하는 믿음의 선배 : 은둔수도자 자일스 (Giles, ? – 710)

그는 그리스 귀족 집안 출신으로 젊은 때에 은둔수도자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경건한 삶이 널리 알려지자, 그는 그리스를 떠나 배를 타고 프랑스 남부 지방의 ‘Nimes’(후일 ‘Saint-Gilles’가 됨)으로 가서 은둔수도원을 설립했습니다.

그곳에서 환자들과 다리를 저는 사람들, 그리고 한센씨 병을 앓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았습니다. 보통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가 힘든 사람들이 갈 곳이 없어서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 그의 수도원이었습니다.

마태오 복음서 25장 40절이 말하는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거처를 마련해 주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역설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사람들을 피해 고향을 떠나고 산속으로 들어갔는데, 수많은 사람들, 곧 쫓김을 받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자일스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기를 바랐는데,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으로 독일, 폴란드, 헝가리, 영국 등 유럽 곳곳에 은둔수도원이 세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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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느님, 교회의 강단들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대속의 십자가를 극명하게 전하는 증언이 있게 하옵소서. 저희 인간들의 영광을 위하여 강단이 사용되지 않게 하시며,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만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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