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 복음 } 루가 복음서 8장 19-21절 …. [19]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께 왔으나 사람들이 많아서 만날 수가 없었다. [20]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선생님의 어머님과 형제분들이 만나시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알려드렸다. [21] 그러자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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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우리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은, 늘 실천을 강조했습니다. 그분이 평양 대성학교를 세우고 청년들을 가르칠 때에도 ‘무실역행’(참되고 실속이 있도록 힘써 실행함)을 교훈으로 삼았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동포들을 모으고 흥사단을 조직할 때에도 ‘무실역행’을 ‘약법’(약속한 법, 헌법)으로 삼았습니다.
누구나 나라 사랑하여, 일제에 강탈 당한 조국을 도로 찾자고 외치지만, 무엇 하나라도 정하고 실천하는 힘이 없이는, 되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을 것임을 강조했던 도산 선생의 외마디 가르침이었던 것입니다.
도산 선생의 이 교훈이 어디서 따온 것인가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그가 기독교인이었으므로, 야고보서 1장 22절, “그러니 그저 듣기만 하여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말고 말씀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에서 따온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또 그가 한학을 했으니, 우리 민족의 스승 율곡 선생이 그의 소책자 ‘격몽요결’에서 “경(가벼이 처신하지 않고 삼가함)에 거하여 그 근본을 세우며, 이치를 궁구하여 선(선행)에 밝으며, 힘써 행하여 실(실질)을 밝힐 것이니, 이 세 가지는 종신사업(평생에 할 일)이다.” 에서 따온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어디서 따왔든, 하느님의 뜻을 깨닫는 사람이 깨달음에서 멈추고 만다면, 그것은 깨닫지 못한 자나 다름이 없고, 실천이 따름으로 깨달음의 진정성이 나타나는 것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얼마나 우리 주님께서, 친히 하늘 나라 복음을 가르치고 나서 듣기만 하지 말고, 실행하라고 강조하고 싶으셨으면, 때마침 예수님의 모친과 형제들이 뵙고 싶어 지금 밖에서 기다린다는 소식을 알려 드렸을 때에, ‘내 어머니가 따로 있고, 내 형제가 따로 있습니까? 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내 어머니며, 내 형제들 아닙니까?’ 라고 하셨겠습니까?
무엇을 실천하라고 호소하셨습니까? 루가 복음서에서 이 말씀(룩 8:19-21)이 있기 전에 가르치신 말씀들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지금 가난한 사람은 복될 것이다. … 원수를 사랑하여라. … 남을 비판하지 마라. …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꾸준히 열매를 맺어라.’ (룩 6-8장) 하신 교훈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모친이 되고 예수님의 형제가 된다’ 는 말씀의 진의가 무엇일까요? 가족은 서로 무한책임을 져주는 관계입니다. 예수님께서 무한책임을 져주시는 관계가 보통 관계입니까? 그 책임을 져주신다는 약속이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정작 예수님의 모친과 형제들이, 예수님께서 집안에서 무리들에게 ‘어머니와 형제들 운운’ 하신 말씀을 전해 들었을 때에, 마음에 섭섭한 감정이 있었을까요? 육신으로 가족이라 하더라도, 마음과 실천으로 주님과 가족이 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 시대에 누가 애국하는 사람들입니까? 우리가 알지 않습니까?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진실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나라를 위한다 하면서도, 남을 속이는 자들이 나라 망치는 사람들 아닙니까?
지금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존귀히 여기는 사람들, 하느님의 교회를 거룩하게 보존하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시간과 정력과 재물을 쏟아넣는 사람들 아닙니까?
물론 행위가 구원의 조건은 아니라는 대전제 아래에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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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느님, 저희가 말씀을 듣기만 하여 스스로 속이는 자가 되지 말고, 실천함으로 예수님의 가족 답게 사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 정정 }} 어제 성경본문에서 ‘죄인’을 ‘지인’으로 잘못 기록한 것을 정정해 올리며, 불찰을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