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뱅상 드 폴을 기념하며> …………………….. (새번역)

{ 누가복음 4장 16-22절 } …. [16]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나신 나사렛에 오셔서,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는 성경을 읽으려고 일어서서 [17] 예언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건네 받아서, 그것을 펴시어, 이런 말씀이 있는 데를 찾으셨다. [18]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주고, [19]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께서 두루 마리를 말아서, 시중드는 사람에게 되돌려주시고, 앉으셨다. 회당에 있는 모든 사람의 눈은 예수께로 쏠렸다. [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 [22]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 은혜로운 말씀에 놀라서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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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뱅상 드 폴’(Vincent de Paul, 1581 – 1660)은 프랑스 사람이지만, 불어로 읽을 때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 않고, 그가 속한 로마카톨릭교회의 라틴어 이름(Vincentius)이 통용되어 와서, 우리나라에서도 그를 ‘빈첸시오’라고 부릅니다.

빈첸시오는 프랑스 남부 가스꼬뉴 지방의 한 가난한 농민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찍부터 프란시스칸 수도회의 교육을 받고 19세에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빈첸시오는 회고하기를, 자신의 어린 시절의 꿈은 가난에서 어떻게 벗어나는가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서품을 받은 후 9년 동안은 그가 ‘명목상의 사제’일 뿐, 사제다운 일은 하지 못했다고 반성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1609년부터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구제활동과 복음을 전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빈첸시오가 자신의 목회적 관심이 가난한 자들에게로 집중했을 뿐, 진정한 ‘회심’을 경험한 것은 8년이 더 지난 1617년 정월부터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그는 폴레뷰 지방에서 농민들 앞에서 설교를 하고, 고해성사를 받으면서 지내고 있었는데, 그러면서 농민들의 삶의 실체를 점차 알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무렵, 돌봐 줄 사람이 없어서 한 병든 농민이 고독사를 하게 된 형편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과 몇몇 신도들로 조직한 ‘간병활동 팀’을 만들었습니다.

이 활동이, 점차로 대상자도 늘어나고, 자원봉사자도 늘어나서, 간병팀은 확대되어 갔습니다. 그래서 이 단체의 이름을 ‘사랑의 형제회’라고 불렀습니다.

이 활동을 통해서 빈첸시오가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말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가난을 극복하고, 가난으로 인한 고통스런 삶을 벗어나도록 돕는 일을 통해서 복음이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소중한 그의 경험을 혼자서만 간직하지 않고, 이웃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 사제들에게도 그의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성직을 준비하고 있는 수도자들과도 그의 경험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빈첸시오는 ‘가난한 자들을 향한 선교활동’을 ‘하나님의 선교’의 원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의 한 서신 속에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실 때에, 왕실도 아니고, 귀족이나 중산층도 아니고, 가난한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보내셨다. 나는 이 점을 중요시했다.”고 썼습니다.

그래서 빈첸시오는 가난한 사람들을 단순한 구제의 대상으로 보질 않고, 그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를 바랐습니다.

그 무렵, 한 강력한 동역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는 루이즈 드 마리약(Louise de Marillac, 1591 – 1660)이라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를 통해서 가난한 사람들이나 환자에 국한한 자선활동을 넘어, 다양한 사회문제들에 뛰어들 수 있는 ‘자선 자매회’(The Sisters of Charity)라는 단체를 창설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 단체들은 갤리선 노예들, 전재민들, 재소자들, 그리고 그밖의 다양한 구호대상자들을 위한 활동을 펼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선교사들을 양성하여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 섬으로 파송하기도 했습니다.

활동의 규모가 커지면서, 수도원과 학교, 그리고 구호단체들을 수용할 수 있는 본부를 마련하기 위해서 파리의 ‘생-라자르’라는 건물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빈첸시오의 ‘선교공동체’라고 불렀던 이름 대신에, ‘라자리스트’(Lazarists, ‘라자로들의 모임’)이라는 별칭으로 사람들이 부르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는 1660년 9월 27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유업은 계속적으로 확대-성장하여,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그의 활동을 통해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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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실 때에 가난한 자로 오셨던 것 처럼, 오늘도 우리 곁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저희가 일시적 동정의 마음으로 바라보지 말게 하시고, 그들을 통하여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고 계신 성령님을 뵙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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