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 서신 } 갈라디아서 3장 1-5절 …. [1] 갈라디아 사람들이여, 왜 그렇게 어리석습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여러분의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나 있는데 누가 여러분을 미혹시켰단 말입니까? [2] 한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율법을 지켜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3]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은 사람들입니까? 성령의 힘으로 시작한 일을 지금 와서 인간의 힘으로 마치려 드는 것입니까? [4] 여러분이 겪은 그 모든 경험이 다 헛일이었단 말입니까? 설마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5]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고 여러분 가운데서 기적을 행하신 것이 여러분이 율법을 지켰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복음을 듣고 믿었기 때문입니까?
{ 복음 } 루가 복음서 11장 5-13절 …. [5]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 한 사람에게 어떤 친구가 있다고 하자. 한밤중에 그 친구를 찾아가서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주게. [6] 내 친구 하나가 먼 길을 가다가 우리 집에 들렀는데 내어놓을 것이 있어야지.’ 하고 사정을 한다면 [7] 그 친구는 안에서 ‘귀찮게 굴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도 나도 다 잠자리에 들었으니 일어나서 줄 수가 없네.’ 하고 거절할 것이다. [8] 잘 들어라. 이렇게 우정만으로는 일어나서 빵을 내어주지 않겠지만 귀찮게 졸라대면 마침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겠느냐? [9] 그러므로 나는 말한다.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11] 생선을 달라는 자식에게 뱀을 줄 아비가 어디 있겠으며 [12]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3] 너희가 악하면서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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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 1 ) 오늘의 서신본문(갈 3:1-5)에서 누누히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게 된 것’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복음이란 ‘예수가 구세주(그리스도)이심’이 복음, 곧 ‘복된 소식’입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듣고, 온 마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일 때, 우리들의 인격은 이 믿음 안에서 새로 태어나고, 하느님의 자녀라는 영적 신분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인간의 지혜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믿고 구원의 백성이 되는 사건과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게 되는 역사적 사건은 동시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님을 이해하는 데에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전제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성령님과의 친교가 중심이 되고 있습니까? 그래서 성령님과의 친교가 우리의 기도와 예배를 이루고, 성령님과의 친교가 우리의 나날의 생활을 이루어가고 있습니까?
바로 이것이 사도 바울이, 오늘 서신 말씀에서는 갈라디아 교우들에게 물었던 질문이고, 사도행전 19장 2-3절에서는 에페소 교우들에게 “당신들이 신도가 되었을 때 성령을 받았습니까?” 라고 물었던 질문이고, 이 아침에는 우리들에게 묻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가장 본질적인 질문인 것입니다.
( 2 ) 오늘 복음본문(룩 11:5-13) 가운데서 13절을 주목해 봅시다다.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하면서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하면서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이라고 한 것은, ‘비록 못된 아버지일지라도 자기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려고 애쓰는 것은 본능이지 않느냐?’하는 뜻이지요.
이어서 하신 말씀이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로 정리해 주셨습니다. 그냥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지 않고,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예상 밖의 언급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회다’ 싶으셨던 모양이었습니다. 가장 좋은 선물이 성령이라는 사실을 언젠가는 말씀해주시고 싶으셨던 중에, 그 말씀을 여기서 펼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서두에서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모여서 기도하던 가운데 성령께서 임하셨다고 했는데, 이것은 기도했다는 조건을 이루었기 때문에 성령이 임하셨다기보다, 보내 주시기로 약속하셨던 성령을 그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중에 성취시키신 것이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 앞에 청구서를 들고 서서, 그것을 주십사고 졸라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들의 소원과 하느님의 소원이 일치할 만한 것을 간구하고 있을 때에, 우리들의 빈손을 채워 주시는 하느님의 응답을 보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느님께서 성도들에게 가장 큰 것으로 선물을 주시고 싶으실 때에는 성령, 곧 ‘거룩한 영’, ‘거룩한 바람’, ‘하느님의 기운’을 베푸십니다.
하느님의 가장 크고 놀라운 선물인 성령님과의 친밀함(코이노니아) 속에 늘 머무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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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느님, 저희의 생활에서 성령님의 임재-내주하심 속에 항상 살도록 하옵소서. 그리하여 하느님의 구원의 감격이 우리들 가운데 차고 넘치게 하시며, 어둠과 좌절에 빠졌던 세상이 하느님의 소망의 빛으로 가득찬 것을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