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복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서신 } 갈라티아 3장 7-14절 …. [7] 그래서 믿음으로 사는 이들이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알아야 합니다. [8] 성경은, 이방 민족들도 믿기만 하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해주시리라는 것을 미리 내다보고, “모든 민족이 네 안에서 복을 받을 것이다” 라는 기쁜 소식을 아브라함에게 미리 알려 주었습니다. [9]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이들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10] 그와는 달리 율법만 따르려고 애쓰는 무리는 모두 저주를 받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율법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한결같이 실천하지 않는 무리는 모두 저주를 받는다.” [11]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 공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이렇게 씌어 있기 때문입니다. “공의로운 사람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12] 율법은 믿음과 관련이 없습니다. “그 규정을 실천하는 사람은 그것으로 살 따름입니다.” [13]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스스로 저주받은 몸이 되시어,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은 모두 저주받은 무리이다.” [14] 이렇게 하심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이방 민족에게 이르렀듯이, 우리도 약속된 성령을 통하여 믿음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

<( 말씀 묵상 )> ( 1 ) 1950년대 이야기입니다. 저는 아직 어린이였으므로 값싼 군것질거리를 길가에서 파는 것을 볼 때면 꽤나 먹고 싶어했습니다. 더구나 다른 아이들이 그것을 먹고 있는 것을 볼 때면 나도 저절로 군침이 돌곤 했지요.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 형제들에게 절대로 그런 군것질거리를 사 준 적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우리 집은 돈이 부족해서 그런가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저희에게도 용돈을 주시면서, ‘아무 군것질거리나 사먹으면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걸 먹었다가는 병에 걸릴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왜 병에 걸릴지 잘 믿기지 않는 말씀이었지만, 주머니에 약간의 용돈이 있을 때에도 군것질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학교 가는 길에 있는 오뎅집 앞을 지날 때면, 주머니 속의 용돈을 만지작거리며 유혹을 받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함께 학교로 가던 제 동생만 곁에 없으면 그걸 사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 혼자 그 앞을 지날 때에도 사먹지 못했습니다. 그건 ‘절대로 길가에서 파는 군것질은 사 먹지 마라.’ 하신 부모님의 엄명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초여름에, 집에서 자하문밖까지 좋이 두 시간 이상 걸리는 자두밭에 가서 자두를 한 자루 씩이나 사서 머리에 이고 오곤 했습니다. 가는 데에 두 시간 오는 데에 두 시간을 걸려서 오셨습니다. 그 고생을 해서 사다주신 자두는 우리 형제들의 올바른 섭생을 위해서였습니다.

어머니가 땀 흘려 자두 자루를 이고 오신 모습을 본 우리 형제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군것질거리는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지금껏 몸으로 보여주신 어머니의 사랑을 잊지 못해서, 80년 동안 군것질은 삼갑니다.

( 2 ) 율법은 우리의 복된 삶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규정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나약한 마음은 오히려 율법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떠나기가 일쑤였습니다.

인간을 위해 하나님께서 정하신 율법이 오히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멀게 한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시던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에 오셔서 당신(그)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자두 자루를 메고 한 나절을 고생하신 우리 어머니에 비교도 할 수 없게 크고 놀라우신 사랑’을 십자가에 달리셔서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생각할 때, 지금까지 우리를 구속하던 율법의 의심은 어느덧 사라지고, 다만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 만이 마음에 벅차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하는, ‘믿음의 관계’로 일생 하나님 안에서 살게 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하나님 ‘믿음’ 입니다.

( 3 ) 오늘 세계교회는 믿음의 선배 세 분을 기념합니다.

가) 데니스, 또는 디오니시우스(Denis, 또는 Dionysius, ? – 250 ?) : 프랑스 파리교구의 주교였던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일생 애쓰던 끝에 로마제국의 박해의 칼날에 목베임을 받아 순교했습니다. 파리의 ‘몽마르뜨르’(순교자의 언덕)는 데니스와 그와 함께 순교한 루스티쿠스 사제, 엘류테리우스 부제를 기념하는 이름입니다.

나) 키노그(Cynog) : 그는 주후 7세기 웨일스의 브리케이니옥 지방의 왕이었던 브리칸의 아들이었습니다. 왕자였던 것이지요. 그렇지만 그의 왕족의 신분을 스스로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인 것을 더 영예롭게 생각하여, 수도자로 살다가, 색슨족 이교도들에게 순교를 당했습니다.

다) 그로스테스트(Robert Grosseteste, 1175 – 1253) : 그는 철학자이며 자연과학에도 조예가 깊었고, 링컨 교구의 주교였습니다. 그는 무질서하고 부패한 교회를 일신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했습니다. 그의 관심은 교황의 그릇된 자세와 언행까지 지적하기를 서슴지 않았으므로, 그의 주위에 동료가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생 고독하게 정의로운 사람으로 살다가 1253년 오늘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수학과 광학(optics) 분야의 업적은 오늘날까지 그들 분야의 후배들에 의해 기억되고 있습니다.

~~~~~

<기도> 주 하나님, 십자가를 지시고 온 몸으로 저희에게 다가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저희가 온 마음을 다해 받들렵니다. 어떤 칼날에도 변치 않는 마음으로 주 하나님을 받들어 섬기던 믿음의 선배들을 좇아 저희도 일심으로 주 하나님을 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