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는 누군가?

<복음서 기자 누가의 기념일> ……………….. (새번역)

{ 서신 } 디모데후서 4장 6 – 11절상 … [6] 나(* 바울)는 이미 부어드리는 제물로 피를 흘릴 때가 되었고,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9] 그대(* 디모데)는 속히 나에게로 오십시오.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해서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가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가고, 디도는 달마디아로 가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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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 1 ) 성경에 실린 사도 바울의 여러 편지들 가운데 가장 나중에 쓴 편지인 디모데후서의 끝 장의 내용이 오늘 말씀 묵상의 본문입니다.

바울은 그의 범상치 않은 죽음, 곧 순교를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내가 제물로 바쳐질 날이 머지않다’는 뜻의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본문 6절) 이를 토대로 이 편지(디모데 전후서)들이 바울이 로마에서 두 차례에 걸친 수감생활 중에서도 나중에 투옥되었던 말기(주후 65-68년 사이)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가 수감 중이었고, 몸도 노쇠하였지만, 고독한 것이 큰 괴로움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선교동역자였던 데마(골 4:14)가, 여러 가지 수난이 뒤따르는 복음사역을 더 견뎌내지 못하고, 선교팀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가 ‘데살로니가로 갔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레스게와 디도는 나름대로 복음사역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의 곁에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큰 사도, 바울의 곁을 말년까지 지켜 주고 있던 사람이 누가 뿐이었습니다. 대화 상대자로, 선교사역보조자로, 의사로, 생활보조자로 노년의 바울을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일이 대부분이었지만, 참으로 큰 일을 솔선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흔히 돕는 사람은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 비중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인식하지만, 영적 사역에서는 비중이 크고 작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담당하고 있는 영적 사역은 대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바울의 일이 디모데의 일이었고, 누가의 일이었고, 마가의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와 더불어 영적 사역을 함께 나누고 계시는가요? 부디 그 영적 사역을 위해서 기도와 협력을 끊지 마시기 바랍니다.

( 2 ) 누가는 누구인가요? 사도행전의 저자는 자기 이름이 누구라고 밝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도행전 16장 10절부터 사도행전 말미까지 여러 차례 문장의 주어가 “우리가” 또는 “우리의 (무엇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이 누군데 그들 무리에 섞이어 자기들을 “우리”라고 말하는 것인가?’고 오랫동안 성서연구가들의 큰 수수께끼가 되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10절 이하에 나오는 이름을 하나씩 검토하면 알 것 같아도, 명단 자체를 소개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짐짓 자신을 감추고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이지요.

후일에 사도 바울이 ‘누가’라는 사람을 말하면서 “우리의 친애하는 의사 누가”(골 4:14)라고 쓴 적이 있었고 ‘나의 동역자 … 누가’(빌레몬 24절)라고 쓴 일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힌트를 받아 가지고 사도행전의 저자를 누가가 아닐까고 가설을 세우고 추적한 결과로 얻은 결론이 ‘누가가 아니면 다른 사람일 수가 없다’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과 똑같은 패턴 곧 “데오필로님, 운운”으로 시작된 셋째 복음서의 저자도 누가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신약성경의 작성자로 바울(13권)과 요한(5권) 다음으로 공훈을 크게 남긴 사람으로, 누가가 그 일을 해낸 것을 교회가 밝힐 수 있었습니다.

생명 있는 일을 하면서도 겸허히 자신을 감추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자비로우심과 권능이심을 드러내는 일에만 전념하는 누가의 신앙을 본받고 싶어지는 겁니다.

( 3 ) 에스겔서 1장 10절에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서 있는 네 가지 생물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람, 사자, 황소, 독수리입니다.

이것을 참고하여 요한계시록 4장 6-7절에서는 하나님의 보좌 둘레에 있는 생물을 말하기를,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로 소개합니다. 순서는 틀려도 네 가지 생물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교부들 가운데는 이 네 생물들을 네 개의 복음서와 연결해서 생각하는 이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들의 견해는 서로 같지가 않아서 다양하게 갈라져 있지만, 누가복음을 황소 또는 송아지와 연결시키려는 생각은 공통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서의 생물로서의 상징으로 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누가복음의 서두에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인 사제 사가랴가 예루살렘으로 가서 사제의 일을 하고 있는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제가 사용하는 제물 가운데 소가 대표적인 제물이었고,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리신 대속의 제물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선포한 것이 누가복음이라는 점에서 누가복음을 황소와 연관을 지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누가복음을 사랑하는 이유도 우리들의 대속 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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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겸손한 복음증거자 누가를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그의 학술과 의술이 겸허히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증거하는 일에 직접 간접으로 사용되었음을 보면서, 저희도 힘과 지혜를 동원하여 하나님 나라가 건설되는 일을 섬길 수 있도록, 성령님이시여, 날마다 우리의 앞길을 열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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