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야고보 기념일> ……… (신복룡 신구약전서)
{ 구약 차용 } 사도행전 15장 12-22절 상 …. [12] 그러자 온 회중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바르나바와 바울로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통하여 이방 민족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표징과 이적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13] 그들이 말을 마치자 야고보가 이렇게 말했다. “형제 여러분, 내 말을 들어보시오. [14] 하나님께서 처음에 이방 민족 가운데에서 자신의 이름을 위한 백성을 모으시려고 어떻게 배려하셨는지, 시몬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15] 이는 예언자들의 말과도 일치하는데,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6] ‘그 뒤에 나는 돌아와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지으리라. 그곳의 허물어진 것들을 다시 지어 그 장막을 바로 세우리라. [17] 그리하여 나머지 다른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불리는 다른 모든 민족이 주님을 찾게 되리라.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고 이 일들을 실행하니 [18] 예로부터 알려진 일들이다.’ [19] 그러므로 내가 판단하기에, 이방 민족 가운데 하나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고, [20] 다만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상에게 바쳐 더러워진 음식과, 불륜과,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멀리하라고 해야 합니다. [21] 사실 예로부터 각 고을에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모세의 율법을 봉독하며 선포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22] 그때 사도들과 원로들은 온 교회와 더불어, 자기들 가운데 사람들을 뽑아 바울로와 바르나바와 함께 안티오키아로 보내기로 했다.
{ 복음 } 마테오 복음서 13장 54-58절 …. [54] 예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55]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56]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57]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 존경받지 못합니다.” [58]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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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는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가까이서 관찰한 사람입니다. 형제니까, 매일 예수님과 한 집안에서 침식을 나누며, 일거수 일투족을 곁에서 보며 자랐고, 생활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야고보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니(막 3:21 참고),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럴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야고보가 남달리 불신앙의 체질이어서 그랬던 것도 아니었고, 예수님께서 형제들에게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속이려 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야고보도 인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말에 ‘등하불명’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등잔 밑이 어둡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집안 식구 중에 혹시 불신자가 있다 하더라도 낙심하지 맙시다. 우리들의 불찰이나 언행의 불일치로, 가장 가까이서 복음을 듣지 못하고 살아온, 또는 복음은 귀로 많이 들었어도 마음에 감동이 없었던 가족이 있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오히려 우리들을 격려하시려는 하나님의 조치인 줄 알고 감사드려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형제들의 불신앙으로 인해서 슬프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심하지 않으셨습니다. 후일에 어떤 변화가 형제들에게서 일어날 것임을 내다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야고보가 그의 육신의 형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어 결정적으로 거듭나게 된 것은 아마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난 이후였던 것으로 보입니다.(행 1:13-14)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나니까, 어렸을 적부터 그가 경험한 예수님의 모든 세세한 기억들이 한 줄기의 스토리로 정리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누구보다도 예수님에 관해서 증언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직계 사도들보다도 증언할 일들이 더 많았습니다. 얼마나 열정적인 복음의 증거자였던지, 사도들과 예루살렘의 성도들이 그를 교회의 시조인 예루살렘 교회의 책임자로 추대했습니다.
오늘의 서신차용 본문인 사도행전 기록에 의하면, 주후 51년 경 유대인의 박해 아래 있었던 예루살렘교회와 이방 땅에서 활발하게 복음을 전하고 있었던 안티오키아교회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일어날 뻔했던 상황을 정리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즉, 안티오키아교회는 할례를 경홀히 여기는 교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고 예루살렘 성도들 사이에서 비난하는 이들이 꽤 있었고, 복음은 율법 전통을 이미 벗어났다고 안티오키아 성도들 대부분은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지도자가 야고보였습니다.(오늘의 본문 참조) 예루살렘교회도 안티오키아교회도 만족할 만한 결론을 내어준 것입니다. 이 결의에 의해서 21세기 한국교회도 할례의 법을 벗어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예루살렘교회 ‘담임 성직자’를 하루 아침에 처형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성경보다 더 상세하게 전해준 역사책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 옛날 역사가 요세푸스가 쓴 ‘유대 고대사’와 동시대의 역사가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에서 증언했습니다:
즉, 야고보는 매우 경건한 사람이어서, 사람들이 그를 ‘의인 야고보’라고 불렀다고 했고, 그가 기도를 많이 하여 그의 무릎이 낙타의 무릎 처럼 굳은살이 뚜꺼웠다고 했습니다.
또 주후 62년, 로마 총독 페스투스가 죽고, 후임 아비누스가 부임하기 직전인 공백기에, 유대의 대제사장 아나누스가 산헤드린을 소집하여 종교재판을 벌여, 야고보를 처형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출중한 지도자를 오래도록 초대교회인 예루살렘을 지키도록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지 않았는가, 우리들은 애통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있으셨을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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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예수님의 생시에 친형인 예수님에 대하여 차거운 마음을 가졌던 야고보를 변화시키시어,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로 삼으시고,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까지 충성을 다하게 하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의 가족들 가운데 불신앙의 계곡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고 상심하지 말게 하옵소서. 때가 이르러 하나님께서 거두어들이실 날이 있음을 믿습니다. 저희가 사랑의 끈을 놓지 말고 기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