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기념일을 ‘회개의 날’로

<종교개혁기념일에> …………………. (공동번역성서)

{ 서신 } 로마서 1장 16-17절 …. [16] 나는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복음은 먼저 유다인들에게, 그리고 이방인들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 주시는 하느님의 능력입니다. [17]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성서에도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이다.’ 하지 않았습니까?

{ 복음 } 요한 복음서 8장 31-32절 …. [31] 예수께서는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32]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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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종교개혁 기념일인 오늘(10월 31일), 과연 우리 개혁을 표방하는 교회들이, ‘말씀 앞에서 스스로를 돌이키기를 서슴지 않는’ 개혁의 믿음으로 살아 왔는가를 회개하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천주교-개신교 분열의 엄청난 비극을 저지른 채, 오늘에 이르기까지 5백 여년이 지났으면서도, 일치된 교회를 이룰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 마치 당연한 듯 여기고 살아온 것을 회개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흔히 종교개혁 기념일 설교를 할 때면, 당시 교회의 부패상을 역설하고, 말씀의 권위를 회복한 교회개혁 주도자들의 용기가 정의로웠던 것을 강조합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을 교회분열의 명분으로 삼았다 하더라도, 그렇게 갈라져서 오늘의 개혁주의 교회들이 의로운 교회가 되었습니까? 또 말씀의 권위를 따르고 있는 교회가 되었습니까? 저는 많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종교개혁의 실질적 선구자로 꼽는 마틴 루터(1483 – 1546)는 독일의 수도자인 동시에 비텐베르크대학교의 성서신학 강사였습니다. 그가 1517년 오늘, 개혁의 시발점이 되었던 ‘95개 조항의 질문서’를 벽보로 만들어 제시할 때만 해도, 교회를 분열시킬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신학적 각성’을 일으키기 위해 시작한 일이 정치적인 투쟁으로 비화하게 되었던 게 아니었습니까? 당시의 황제와 교황의 막강한 권력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세속의 제후들의 정치적 의도가, 신앙적 의기에 사무친 마틴 루터를 두둔하며 앞세웠고, 루터의 각성운동을 교회분열에 이르도록 일을 유도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교황의 권위를 벗어나려던 독일의 교회가 세속 군주의 권위 아래로 들어간 모양새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것을 ‘복음의 승리’라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종교개혁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대분열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상호정죄, 종교전쟁, 하느님의 이름으로 박해(사형 집행)하는 일까지 벌였던 것입니다.

물론 복음진리를 포기하면서도 교회의 일치를 도모하려는 것은 온당치 않은 일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형제를 영원히 배척하는 것도 복음 정신에 어긋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개혁주의자들의 구호 가운데는 ‘교회는 항상 스스로를 개혁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구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개혁의 명분으로, 나뉜 교회가 다시 분열을 일으키고, 또 분열을 일으켜 지금 세계교회는 수 백 수 천 갈래로 나뉘어 있습니다.

나뉘었던 교회들이 다시 합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까지 분열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종교개혁의 완성은 새로운 교파를 만드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어떤 교회든지 그리스도께 더욱 충실해지려고 힘쓰기만 하면, 그것이 말씀 앞에 온전해지고, 개혁의 정신을 완성시키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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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느님, 저희 교회들로 하여금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날마다 새로워지고 온전하게 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또한 지금까지 서로 나뉘어 헤어진 하느님의 교회들과 연합하는 일에 정성을 기울이게 하시며, 저희가 서로 연합하는 사랑을 세상에 보임으로, 세상이 저희가 주님의 제자들인 것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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