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마음을 품기를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새번역)

{ 서신 } 빌립보서 2장 5-11절 …. [5]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6]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8]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11]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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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오늘은 예수님의 마음을 자기 맘에 품으려고 애쓰면서,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이들의 삶을 단편적으로나마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가) 우리들의 시대에 순교하신 이들 : 우리들의 시대에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빛이심’을 증거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이들이 참으로 많이 있었습니다.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인도에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독재체제나 박해 아래서 목숨을 빼앗긴 사람들이 무수했고, 세계제2차대전 때에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그리고 중국의 문화혁명 때에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 당했습니다.

이분들의 죽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신실성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었고, 그들은 현대 세계 복음화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분들을 오늘 세계교회는 기념합니다.

나) 위니프레드 수녀원장 (Winifred, 약 600 – 660 경) : 지금으로부터 약 1350년 전에 수녀원장으로 평생을 지냈던 믿음의 선배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상상하기도 힘듭니다.

위니프레드는 영국 웨일스 지방에서 태어나 그녀의 외삼촌이며 성직자였던 베우노(Beuno)라는 이에게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수녀가 될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위니프레드가 성장했을 무렵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가, 그녀가 수녀가 될 사람이라며 거절하자, 청혼했던 자가 그녀에게 와서 가혹한 폭력을 가했어도, 그녀의 목숨을 하나님께서 건져주셨습니다.

그후 위니프레드는 웨일스의 Holywell 지방에 수녀원을 세우고, 지역사회의 여성들의 교육, 신앙지도, 여성환자들의 치료, 여성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일생을 보냈습니다.

다) 말라키 주교 (Malachy, 1094 ? – 1148) : 아일랜드 사람인 말라키 주교는 그의 생시의 아일랜드 교회가 안고 있었던 행정적, 신앙적 문제들을 바로잡기 위해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훌륭한 성경 교사였던 아버지 무그론(Mugron)에게서 어려서부터 성경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1119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교회를 맡아 목회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성직자가 되는 예들이 많았고, 심지어 자진해서 주교로 행세하는 사람들까지 있어서, 교회의 질서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말라키는 교회 행정면에서 많은 사람들의 저항을 당하면서도, 교회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이들 권세가들과 맞서야 했습니다.

결국 세도가들의 저항을 당하여 주교직을 사임한 일도 있었지만, 교회를 바로잡는 일은 그치지 않고 애쓰다가, 이 일로 로마를 방문했던 길에서 그만 심한 열병에 걸려, ‘모든 별세자들의 날’ 에 별세하고 말았습니다.

라) 리챠드 후커 (Richard Hooker, 1554 – 1600) : 후커는 성공회의 대표적인 변증신학자로서, Exeter 지방 Heavitree 에서 태어났습니다. 옥스포드에서 공부하고, 사제서품을 받은 후 1585년에 런던에서 신학교수로 일했습니다.

그의 ‘바이어 미디어’(Via Media 중도신앙) 이론은 성공회를 대표하는 신학이 되었습니다. 즉 개혁주의 신앙, 곧 말씀의 권위 위에 교회가 서야 한다는 신앙을 근간으로, 초대교회의 사도적 전승 역시 존숭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신앙에 성공회를 세운 것입니다.

그러나 개혁 신앙과 가톨릭 전통의 중간 지점을 ‘바이어 미디어’라고 하지 않았고, 이슈에 따라서는 전적으로 개혁 신앙과 일치하는 것이 바이어 미디어일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켰습니다.

그의 별세일이 1600년 11월 3일이었습니다.

마) 포레스의 마르틴 수사 (Martin de Porres, 1579 – 1639) : 마르틴은 남미의 페루 사람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백인이었고, 어머니는 흑인 노예였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정식으로 등록된 부부가 아니었습니다.

마르틴의 피부도 검었기 때문에 차별을 받았습니다. 열두 살 때에 그의 첫 직업이 이발사였습니다. 그가 수도자를 지망했지만, 정규의 수사로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수도원의 세탁이나 주방일을 거들어 주는 일을 하게 했습니다.

그렇지만 마르틴은 자신의 일을 소홀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수도원의 빨랫감들을 귀하게 취급했고, 청소를 하면서 기도문을 외웠습니다.

마침내 수도회는 마르틴의 신앙과 헌신에 감동하여 그를 입회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정규의 수사가 된 마르틴은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일, 환자들을 돌보는 일, 청소와 빨래 등 수도원의 허드렛 일을 손이 닿는대로 했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보내다가 1639년 11월 3일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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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예수님이 인류의 소망임을 증거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거나, 평생을 지낸 분들을 오늘 많이 기념하게 되었음을 감사드립니다. 저희들도 그들의 마음에 지녔던 ‘예수님의 마음’ 을 품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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