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자 위해 어떻게 기도할까?

<‘모든 별세자의 날’, 말씀묵상> …………. (공동번역성서)

{ 외경 } 마카베오하 12장 39-45절 …. [39] 유다와 그의 부하들은 전사자의 시체를 묻어야 할 날이 촉박하였으므로 시체들을 거두러 가야만 했다. 그 시체들을 그 다음날 조상들의 묘소에 운반하여 친족들의 옆에 함께 묻어주려고 했던 것이다. [40] 그런데 그 시체 하나하나의 옷을 들쳐보니 그들은 얌니아의 우상을 부적으로 지니고 있었다. 유다인이 이와 같은 물건을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은 율법이 금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죽은 것이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는 것이 분명하게 되었다. [41] 그들은 숨은 일을 모두 드러내시는 정의의 재판관이신 주님을 모두 찬양하였다. [42] 그리고 죽은 자들이 범한 죄를 모두 용서해 달라고 애원하면서 기도를 드렸다. 고결한 유다는 군중들에게 죄지은 자들이 받은 벌이 죽음이라는 것을 눈으로 보았으니 이제는 그들도 죄를 짓지 말라고 권고하였다. [43] 그리고 유다는 각 사람에게서 모금을 하여 은 이천 드라크마를 모아 그것을 속죄의 제사를 위한 비용으로 써달라고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그가 이와 같이 숭고한 일을 한 것은 부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44] 만일 그가 전사자들이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죽은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허사이고 무의미한 일이었을 것이다. [45] 그가 경건하게 죽은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상이 마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그것이야말로 갸륵하고 경건한 생각이었다. 그가 죽은 자들을 위해서 속죄의 제물을 바친 것은 그 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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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마카베오 상-하는 모두 외경에 속한 책입니다. 여기 분명히 죽은 사람들을 위한 기도의 기록이 나오고 있고, 심지어 죽은 자들이 우상을 소지하고 있었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살아 있는 사람들이 기도를 하면서 헌금까지 갹출한 역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천주교는 이 본문을 배경으로 죽은 사람들을 위한 기도가 제도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는 외경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개신교는 여기 기록되어 있는 내용 중 그 무엇도 따르기를 권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개신교는 별세한 자들을 위한 기도의 효험을 철저히 반대하는 입장에 섭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근거 성구를 히브리서에서 찾습니다.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히 9:27)

그러나 많은 성서학자들은 이 히브리서의 말씀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 죽은 이들을 위해 드리는 기도가, 죽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어놓을 수가 없다’는 뜻으로 한 말이지, 기도에서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지 말라는 말씀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또 죽은 부자와 거지 라자로의 비유(룩 16:19-31)에서, 죽은 부자는 죽어서 고통받는 곳에 있고, 거지 라자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데, 그 두 사람이 있는 사이에는 깊은 구렁이 있어서, 오갈 수 없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죽은 부자가 살아 있는 형제들을 위하여 거지 라자로를 보내서 죽음 이후에 될 일에 관해서 경고의 말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나 박절하게 거절당합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이것을 인용하여, 인간이 죽은 이후에는 운명이 바뀔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된다는 뜻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헛일이라는 설명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 회개하는 일의 요긴함을 말씀하려는 것이지,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아무 효험이 없음을 강조하려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면 별세자들을 위해 교회와 신자들이 할 수 있는 기도는 없다는 것이냐는 궁극적인 질문이 나옵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교회는 대체로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바울로 사도의 말씀을 들어 봅시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의 천신들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능력의 천신들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롬 8:38-39)

즉, 우리가 이 말씀에 근거하여, 하느님께 기도하기를, 별세자들에게 ‘긍휼과 자비’(사랑)를 베풀어 달라는 기도를 하는 것은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둘째로, 죽은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비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니 삼가는 것이 옳다고 교회는 말합니다. 이미 별세한 이들의 운명은 하느님께서 정하실 일이지 인간(특별히 가족)의 노력(기도와 헌신)에 의해서 뒤바뀌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셋째로, ‘별세한 이들의 믿음을 본받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은 조심스러운 것이니, 공기도에서 이런 기도를 할 일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별세자들의 믿음이 본받을 만한 것이었는지 아닌지는 하느님께서만 아시는 것이고, 이것을 교회의 공식적 의견 취합(예를 들어 ‘성인 추대’ 등)도 없이 개별적으로 ‘본받을 만한 믿음이었음’을 공언하는 것은 조심해야 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기도> “주 하느님, 저희는 별세한 형제 자매들을 잊지 않습니다. 그들을 통해 베풀어 주신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들과 저희의 믿음을 돌아보시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부활의 소망이 실제가 되는 것을 함께 보게 하옵소서. 하느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에 별세한 이들을 맡겨 올립니다. 저희의 기도로 그들의 구원이 결정될 수 없음을 저희가 믿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하느님의 엄위로우신 심판에 별세한 모든 이들의 운명을 맡겨 올릴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하오니, 주 하느님이시여,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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