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오직 주님의 은총으로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우리말성경)

{ 서신 } 빌립보서 2장 12-15절 …. [12]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여러분이 항상 순종했던 것처럼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십시오. [13]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결단하게 하시고 행동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4] 무슨 일을 하든지 여러분은 불평이나 분쟁 없이 하십시오. [15] 이는 여러분이 흠 없고 순전한 사람들이 돼 뒤틀리고 타락한 세대 가운데서 책망받을 것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세상에서 하늘의 별들처럼 빛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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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성경을 올바로 읽으려면, 글자 하나 하나, 문장 하나 하나를 파고들지 말고, 대부분의 경우 문맥으로 읽는 것이 성경을 바로 읽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저는 될 수 있는대로 주석을 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오늘의 서신 본문을 보면, 12절 말미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십시오.” 라고 했는데, 이것은 성경 전체에서 말하는 ‘구원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것이지, 인간의 어떤 노력 가지고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대원칙과 상충되는 표현이어서, 이의 해명을 위해 다소의 주석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십시오.’ 부분의 희랍어 원문을 글자 하나 하나를 풀어서 직역을 하면, ‘두려움과 떨림을 가지고 당신 자신의 구원을 마무리하십시오.’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마무리하다’로 번역한 부분의 단어는 희랍어로 ‘katergazomai’인데, 그 뜻은 ‘성취하다’, ‘생산하다’, ‘준비시키다’ 같은 것들입니다.

말하자면, 구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인간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의 희생으로 완성하신 구원이, 인간 자신이 자칫 흐트러뜨려 낭패가 없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서 사도 바울의 서신 속에 ‘데마’라는 사람의 이름이 두 번 등장하는데, 한 번은 골로새서(4:14)에서 바울의 선교단에 속하여 누가와 함께 골로새 교회에 문안하는 이의 이름으로 나오고, 또 한 번은 디모데후서(4:10)에서 “이 현세를 사랑한 나머지 나(바울)를 버리고 데살로니카로 가버린” 사람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움과 떨림으로 당신의 구원을 이루라’ 는 말씀은, 이렇게 믿음을 저버릴 위험성을 지닌 이들을 두고 경고하는 말씀인 것이 분명합니다.

참으로 두렵고 떨립니다. 고귀하신 예수님의 대속의 보혈로 어둠의 땅에서 광명한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저와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고 방자하게 굴다가, 구원의 길에서 이탈하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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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누가복음 14장 25-33절 …. [25] 큰 무리가 예수와 함께 길을 가고 있었는데 예수께서 뒤돌아서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6] “누구든지 내게 오면서 자기 부모와 아내와 자식과 형제 혹은 자매와 자기 생명일지라도 나보다 더 사랑하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나를 따르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중 어떤 사람이 탑을 세우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먼저 자리에 앉아 완공할 때까지 어느 정도 비용이 드는지 계산해 보지 않겠느냐? [29] 만약 기초만 잘 닦아 놓고 일을 마칠 수 없다면 보는 사람마다 비웃으며 [30]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이 짓기를 시작만 하고 끝내지는 못했구나.’

[31] 또 어떤 왕이 다른 나라 왕과 전쟁하러 나간다고 하자. 그가 먼저 자리에 앉아 1만 명의 군사로 2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오는 왕을 대항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지 않겠느냐? [32] 만약 승산이 없다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포기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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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이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좋은 시작을 할 때라도 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예를 두 가지 들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그리 수월한 일은 아님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탑을 세우는 일’은 집 짓는 일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탑은 하나의 기념물입니다. 재료도 잘 써야 하고, 설계도 예사스럽지 않아서 건설예산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역사에 남을 일이니까, 어떤 이들은 욕심이 나서 탑건설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예산이 소요되니까, 그만 중도에 공사를 멈추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 되는 일은 힘든 일인 것을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적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왕이 있었습니다. 왕의 입장에서 적군이 쳐들어오면 나라가 위태해지는 것도 문제지만, 자기의 생명이 가장 위태롭습니다. 그런데 왕이 자신의 위신 만을 생각해서 응전 쪽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항복을 하든 응전을 하든 얼른 현실에 맞는 방책을 세워야 할 것 아닙니까? 예수님의 제자 되는 것도 예사롭지 않음을 명심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기분이 내킨다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큰소리 치지 말 것을 경계하셨고, 또 장차 악한 권세들과 맞서 싸워야 할 때를 예상치 못하고, 쉽게 물러서지 말아야 할 것을 경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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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주님의 구원의 백성이 되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성령님께 늘 순종하는 가운데, 저희의 구원을 이루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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