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은 양이 잃어졌음을 부인한다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 복음 } 루가 복음서 15장 1-10절 ….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2]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저 사람은 죄인들을 환영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까지 나누고 있구나!” 하며 못마땅해 하였다. [3]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누가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한 마리를 잃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아흔아홉 마리는 들판에 그대로 둔 채 잃은 양을 찾아 헤매지 않겠느냐? [5] 그러다가 찾게 되면 기뻐서 양을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돌아와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모으고 ‘자, 같이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양을 찾았습니다.’ 하며 좋아할 것이다. [7] 잘 들어두어라. 이와 같이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하늘에서는 더 기뻐할 것이다.”

[8] “또 어떤 여자에게 은전 열 닢이 있었는데 그 중 한 닢을 잃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 여자는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온통 쓸며 그 돈을 찾기까지 샅샅이 다 뒤져볼 것이다. [9] 그러다가 돈을 찾게 되면 자기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모으고 ‘자, 같이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10] 잘 들어두어라.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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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우리가 믿는 성경은 말하기를, 세상 사람들은 목자 되시는 하느님을 떠나 험한 산골짜기에서 헤매는 길 잃은 양의 신세들이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목자이신 하느님께서 친히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셔서, 잃었던 양을 찾아 하느님의 집으로 데려오는 것을 하느님의 구원활동으로 보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인류사의 주제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불신의 인간들은 관점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그 유형을 아래와 같이 대별하여 보고자 합니다.

가) ‘하느님의 집을 떠나 나온 것이 내 신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그 집을 떠나 나온 상태라면, 매우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가만히 놓아두시오. 나는 하나도 쓸쓸하지 않고, 살면서 위기를 느끼지도 않습니다. 그저 나 혼자 살도록 내버려 두면 고맙겠소. 나는 하느님 없이도 얼마든지 살 수 있으니, 나에게 신경쓰지 말기를 바라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신론자)

나) ‘내가 보기에는 길잃은 나를 찾아 나섰다는 당신이 오히려 길 잃은 사람처럼 보이오. 당신은 어쩌다가 기독교라는 울타리에 갇히어 자유를 잃어버리고 말았소? 내가 당신을 보니 오히려 한심스럽소. 제발 그 기독교라는 고정관념에서 떠나시오. 그리고 당신이 떠나온 고향(정체성)을 빨리 찾으시오.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거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불확정성원리 신봉자)

다) ‘자립능력이 부족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신앙공동체든 회원으로 가담하고 사는 것을 원하지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도록 하시오. 그들을 회원(신도)으로 삼아서 위로하고 격려하며 좋은 일 많이 하시오. 나는 당신네 도움을 받지 않고도 독자적으로 살아갈 수 있으니, 내 걱정일랑 하지 마시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오. 나를 건드릴 필요는 없소. 다른 사람들이나 찾아가 보시오.’ 이들 역시 스스로 자만하고 삽니다. (종교다원주의자)

라) ‘나는 기존의 모든 종교에 대해서 회의적이요. 기독교에 대해서 그나마 기대를 했지만, 그 종교도 인간을 이끌만한 힘을 지니고 있지 못해요. 그래서 나는 내 종교를 만들어서 내가 믿으려고 해요. 기독교의 사랑은 좋은 가르침이고, 불교의 ‘해탈’ 역시 좋은 가르침이니, 나의 평생에 따를 신앙을 작성함에 있어 요긴한 것들이오. 거기에 현대적 가치관의 원리도 좀 섞어보도록 할 것이오.’ 이렇게 너스레를 떠는 사람도 봅니다. (개별적 신흥종교 창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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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우리를 엄습하는 종교철학자들이 세상에 많아서, 길 잃은 양들을 찾고 있는 우리를 조롱하는 어휘들을 그들이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느님께서 잃은 양들을 기어이 찾고야 마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하여 위와 같은 헛소리들을 하고 있는 목자 잃은 양들을 하느님의 집으로 데려오고야 말 것입니다.

무신론적 친구들에게 에워싸여 논박을 당하던 욥이, 그의 믿음을 선언한 한 마디가 오늘날 우리들의 선언이기도 합니다.

“나는 믿는다. 나의 변호인이 살아 있음을! 나의 후견인이 마침내 땅 위에 나타나리라. 나의 살갗이 뭉그러져 이 살이 질크러진 후에라도 나는 하느님을 뵙고야 말리라. 나는 기어이 이 두 눈으로 뵙고야 할리라.” (욥 19:25-27)

이 믿음으로, 2천 년 전 잃은 양을 찾으로 오셨던 목자장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우리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제한된 몇 십 년 세월을 살다간다 해도, 이 짧은 기간 동안 우리들의 발이 닿는 곳에서 하느님의 잃은 양들을 찾는 일에 가장 큰 보람을 가지고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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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느님, 지금 세상에는 자신이 험한 산골짜기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양들이, 스스로 목자 잃은 양임을 깨닫지 못한 채 헤매면서 그들을 찾고 있는 작은 목동들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주여, 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자신이 잃어진 양임을 깨닫게 하시고, 하느님의 집을 그리워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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