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공동번역)
사도 바울의 간증을 먼저 들어 보겠습니다.
<딤전1:13-15> [13] 내가 전에는 그리스도를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믿지 않을 때에 모르고 한 일이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를 자비롭게 대해 주셨습니다. [14] 이렇게 우리 주님께서 나에게 은총을 차고 넘치게 베푸셨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들이 가지는 믿음과 사랑을 나에게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15]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은 틀림없는 것이고 누구나 받아들일 만한 사실입니다. 나는 죄인들 중에서 가장 큰 죄인입니다.
** 우리는 사도 바울이 회심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조금 압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사울과 그의 패거리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안수받은 보조자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였던 일을 소개하고 있고, 그리고 9장 전체가, 사울이 어떻게 예수님의 사람이 되었는가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한 대로, 그는 “그리스도를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 였습니다. 진실로 그의 영혼은 길을 잃어 한없이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께서 바울을 불쌍히 여기셔서, 친히 찾아 오셨고, 그의 그릇된 행로를 차단하신 후에, 하느님의 구원사역에서 가장 요긴한 일에 그를 기용하셨습니다. 복음의 사도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이 하느님의 자비였고(13절), 은총이었고(14절), 신뢰와 사랑(14절)이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만, 바울에게서만 있는 일이 아니고, 지난 2천 년 동안 하느님의 집으로 돌아온 모든 이들의 공통된 고백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그의 ‘잃었던 가족’을 하느님의 집으로 되찾아 오신 각각의 놀라운 스토리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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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5:4-7> [4] “너희 가운데 누가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한 마리를 잃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아흔아홉 마리를 들판에 그대로 둔 채 잃은 양을 찾아 헤매지 않겠느냐? [5] 그러다가 찾게 되면 기뻐서 양을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돌아와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모으고 ‘자, 같이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양을 찾았습니다.’ 하며 좋아할 것이다. [7] 잘 들어두어라. 이와 같이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하늘에서는 더 기뻐할 것이다.”
** 만약 목자가 생각하기를 ‘아흔아홉 마리는 무사하니까, 대부분이 무사한 것으로 족하게 여기고, 잃은 양 한 마리는 포기하자’ 라고 하고, 그대로 귀가했다면, 길 잃은 양의 운명은 불 보듯 뻔합니다. 잃은 양은 애타게 밤늦게까지 산속을 헤매며 다니다가, 마침내 들짐승의 먹이가 되고 말았을 겁니다. 이런 사정을 목자가 마음 아파하면서, 기어이 잃었던 새끼양을 찾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목자의 자비요, 은총이며, 사랑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신 하느님의 마음은, 잃은 양을 종내 찾는 목자의 자비, 은총, 사랑의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기도> 주 하느님, 지금도 50억이 넘는 영혼들이 길 잃고 헤매는 세상입니다. 주님께서 잃은 양을 찾으시러 안타까이 산속을 쏘다니고 계신 줄 압니다. 기존의 기독교 국가들 속에도 길잃은 영혼들이 울타리를 부수어 버리고 이탈하고 있습니다. 주님, 이 안타까운 광경을 저희가 보고만 있지 말게 하시고, 목자이신 예수님과 더불어 잃은 영혼들을 찾아오는 일에 힘과 정성을 기울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