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연중29주일 본문> (새번역)
{ 1 } 열왕기하 5장 11-12절 [11] 나아만은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발길을 돌렸다. “적어도, 엘리사가 직접 나와서 정중히 나를 맞이하고, 주 그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상처 위에 직접 안수하여, 나병을 고쳐 주어야 도리가 아닌가? [12] 다마스쿠스에 있는 아마나 강이나 바르발 강이, 이스라엘에 있는 강물보다 좋지 않다는 말이냐? …” 하고 불평하였다. 그렇게 불평을 하고 나서, 나아만은 발길을 돌이켜, 분을 참지 못하며 떠나 …
** 나병에 걸린 시리아 장군 나아만이, 자기 병을 고치러,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왔던 이야기 중의 한 대목입니다. 장군이 찾아 왔으면, 엘리사 선지자가 달려나와 자기를 맞이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런 환영을 못 받았습니다. 그래서 “병을 못 고쳐도 좋다. 이런 무례가 어디 있단 말이냐?” 하면서 성을 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 드리기만 하면, 병이 나을 텐데, 나아만 처럼, 사람들은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 그만 포기하고 맙니다. “주님의 손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다, …” (이사야59:1) 인간이 순종하는 믿음이 없어서, 구원을 못 받고 있는 것입니다.
{ 2 } 디모데후서 2장 8-10절 [8] “내가 전하는 복음대로, 다윗의 자손으로 나시고,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9] 나는 이 복음 때문에 고난을 당하며, 죄수처럼 매여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여 있지 않습니다. [10]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께서 택하여 주신 사람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참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도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 사도 바울이, 이 ‘디모데후서’ 를 쓰고 있을 때에,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언제 그가 불러냄을 당하여, 사형을 당할는지 모르는,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쓴 편지입니다. 하지만, 바울 자신은 물론, 자기에게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복음을 믿어 구원에 이르고,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되리라는 소망에는 조금도 의심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울 사도의 생의 목표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소망이 이루어져,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치게 되는 날, 그가 꿈에도 그리던 스테반과의 해후,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셨던 구세주 예수님을 친히 뵈리라는 소망에 가득차 있었던 것입니다.
{ 3 } 누가복음서 17장 15-19절 [15] 그런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자기의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되돌아와서, [16]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런데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 [18]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되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 사람 한 명밖에 없느냐?” [19] 그런 다음에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 사마리아 사람에게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어떻게 그의 믿음을 보셨습니까? 그는 다만,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러 돌아와 엎드렸을 뿐이었는데요?
감사는 간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감사는 대단히 비중이 큽니다. 감사를 드리게 되면, 감사를 드리는 사람과 감사를 받는 사람 사이에 인격적 관계가 맺어집니다. 인격적 관계가 맺어지는 것을 ‘믿음의 관계’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감사를 드린 일 하나로, 사마리아 사람의 믿음이 인정되었던 것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의 육신이 무너지는 날, 썩지 않을 몸을 입게 될 것이고, 영원한 나라에서 주님과 더불어, 또한 오랫동안 그리던 성도들과 더불어 영원토록 살게 될 것을 믿습니다. 이 약속의 신실함을 저희가 믿습니다. 이 믿음을 훈련 받으면서 저희가 이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희의 믿음이, 저희 인생의 결론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