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사랑’ 의 함수관계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갈라디아서 5장 6절 (새번역)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서, 한 구절을 이해하려면, 문맥 전체를 통해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의 장절에서 끝부분 (“가장 … 일하는 것입니다”) 을 이해하려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습니다: “가장 귀한 것은,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희랍어 원문을 읽어 보았습니다. 희랍어를 여기다 쓰는 대신에, 영어로 직역한 문장을 쓰겠습니다. “But, faith through love, working.” (뜻을 풀면, “그것보다는, 역동적인 사랑을 통하여 나타나는 믿음입니다.”) 무슨 뜻인지, 의미가 떠오릅니까?

한글 ‘개역개정판’ 에서는 이 구절을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고 번역했고, 의역을 표방하고 있는 ‘공동번역’ 에서는 “오직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 만이 중요합니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공동번역을 읽으니까, 이 구절의 윤곽이 어렴풋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직 개운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주석 책을 동원했습니다. 제가 자주 참고하는 J. R. Dummelow 의 ‘A Commentary on the Holy Bible’ 을 들어가 보았습니다. 이 주석가는 아예 독자에게 건의하기를, 야고보서 2장 14-26절과 비교해 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야고보서의 해당 본문을 적어 드립니다:

[14]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하고 있겠습니까? [15]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 먹을 것조차 없는데, [16] 여러분 가운데서 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십시오” 하면서, 말만 하고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7] 이와 같이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 만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18]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너에게는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행함이 있다. 행함이 없는 너의 믿음을 나에게 보여라. 그리하면 나는 행함으로 나의 믿음을 너에게 보이겠다.” [19] 그대는 하나님께서 한 분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잘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귀신들도 그렇게 믿고 떱니다. [20] 아,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고 싶습니까?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고서 행함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22] 그대가 보는 대로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작용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함으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23]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브라함의 의로움으로 여기셨다”고 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고, 또 사람들이 그를 하나님의 벗이라고 불렀습니다.

[24] 여러분이 아는 대로, 사람은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지,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25] 창녀 라합도 정탐꾼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내보내서, 행함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26]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새번역)

<기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약속하신 대로 이루시는 데서 증거하시듯이, 저희도 생각과 말로만 주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저희의 삶 전체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믿음을 보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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