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주일본문 묵상> (새번역)
{ 1 } 구약 = 창세기 32장 23-26절 [23] 야곱은 이렇게 식구들을 인도하여 개울을 건너 보내고, 자기에게 딸린 모든 소유도 건너 보내고 난 다음에, [24] 뒤에 홀로 남았는데, 어떤 이가 나타나 야곱을 붙잡고 동이 틀 때까지 씨름을 하였다. [25] 그는 도저히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가 엉덩이뼈를 다쳤다. [26] 그가, 날이 새려고 하니 놓아 달라고 하였지만, 야곱은 자기에게 축복해 주지 않으면 보내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 2 } 서신 = 디모데후서 4장 3-5절 [3]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건전한 교훈을 받으려 하지 않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네 욕심에 맞추어 스승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4] 그들은 진리를 듣지 않고, 꾸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5] 그러나 그대는 모든 일에 정신을 차려서 고난을 참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그대의 직무를 완수하십시오.
{ 3 } 복음 = 누가복음서 18장 5-7절 [5] “이 과부가 나를 이렇게 귀찮게 하니, 그의 권리를 찾아 주어야 하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가 자꾸만 찾아와서 나를 못 견디게 할 것이다.” [6]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귀담아들어라. [7]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의 권리를 찾아주시지 않으시고, 모른 체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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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세 본문 (구약, 서신, 복음) 속에는 야곱, 바울, 어떤 과부 등 세 사람의 기도자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들의 기도생활을 검토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저희의 존재를 알려 드리고,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삶을 하려는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우리들의 존재, 우리들의 요구를 잘 알고 계십니다.
갓난 아기였을 때에는, 때가 되면 어머니가 젖을 물려 주고, 때가 되면 기저귀를 갈아 주었습니다. 하지만 더 자라나게 되면서, 우리들의 형편을 우리가 인식하고 우리들의 요구를 스스로 부모님께 표현하는 일이 중요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회활동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들의 감사함, 우리들의 상황 이해, 우리들의 요구를 아뢰는 것은,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는 데에 있어서 기본적인 일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기도’ 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알고 있는 부모님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학교 다녀 오겠습니다’ ‘이번 등록금은 내일이 마감날입니다’ 이런 말씀을 안 드려도 됩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야곱은 자기 형, 에서에게 큰 잘못을 저지르고, 멀리 도망쳐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지금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옵니다. 형에게 혼날 줄을 아는 야곱은 마음이 초조합니다. 그래서 밤새 하나님께 졸라댑니다. 어떻게 해야 형에게 용서받고, 고향 땅에서 살 수가 있는지, 보장을 좀 해 주십사는 기도였습니다. 사실 어처구니 없는 기도였습니다.
바울은 모든 기도자들이 조심해야 할 내용을 말합니다.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응답)만 졸라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자기 뜻을 관철하려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거절하시거나, 유예하시거나, 다른 대안을 주십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쓴 잔을 치워 주시기를” 빌고 있었지마는, 기도의 끝에 가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하셨습니다.
복음본문에 나오는 한 과부의 간절한 요청은, 법 대로 재판을 해 주기를 바라는 간곡한 청원이었습니다. 재판관은 귀찮아했지마는, 마침내 끈질긴 과부의 요청을 들어 주었습니다. 하물며, 의로우시고, 자비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기도를 왜 안 들어 주시겠느냐고 기도하기를 권유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상황은 하나님께 다가갈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하늘 보좌에 계셔도, 성령으로 저희들 곁에서 항상 기도로 대화하시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저희의 영혼이, 한시도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지 말고, 기도로 하나님과 친밀한 은혜 속에 살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