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문, 좁은 문, 닫힌 문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루가복음 13장 22-27절 (공동번역)

[22]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여러 동네와 마을에 들러서 가르치셨다. [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선생님, 구원받을 사람은 얼마 안 되겠지요?”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24] “사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있는 힘을 다하여라.

[25] 집주인이 일어나서 문을 닫아버린 뒤에는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인님, 문을 열어주십시오.’ 하고 아무리 졸라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할 것이다. [26] 그래서 너희가 ‘저희가 먹고 마실 때에 주인님도 같이 계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우리 동네에서 가르치시지 않았습니까?’ 해도 [27] 주인은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악을 일삼는 자들아, 모두 물러가라.’ 하고 대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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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세 가지 문을 말씀하십니다. ‘구원의 문’(24절), ‘좁은 문’(24절), ‘닫힌 문’(25절), 이렇게 세 가지 문입니다.

‘구원의 문’을 설명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려고” 바라는 문이라 하셨습니다. 바라기만 하면 으례 그 구원의 문으로 들어갈 줄 알았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후손들이 있었습니다. 마치 오늘날의 어느 특정 교단의 교회를 출석하고 있으면 자연히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는 줄 아는 사람들과 흡사합니다.

그래서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기를 바란다면, ‘넓은 문’(쉬운 문)으로 들어가려 하지 말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하셨습니다. 허장성세를 해 가지고는 들어갈 수 없는 좁은 문, ‘몸이 비대하면’ (너무 자기의 소유에만 골몰하던 이들이라면) 들어가기 힘든 문, 일찌감치 포기하는 사람은 못 들어가는 문을 말합니다.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면, ‘회개와 믿음’이 그 열쇠라고 성경의 수많은 곳에서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해법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구원의 문을 ‘좁은 문’ 인 줄로 여기는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은 적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좁은 문은 언제 봐도, 그리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들어가기를 거부합니다. 하지만 들어서면, 그것이 구원의 문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좁은 문을 회피하다가, 어느 날 마침내 늙고, 병이 들어, 구원의 문을 찾을 필요가 생길 때에, ‘닫힌 문’ 앞에서 ‘문 좀 열어 주기를’ 애걸할 때가 올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닫힌 문의 문루에 서서, “왜 이리 시끄럽게 구느냐?” 하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때에 문 밖에 있던 사람들이, ‘아, 주님이시군요. 안녕하셨습니까? 좀 바쁜 일이 있어서 늦었습니다. 문 좀 열어 주세요.’ 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안됐네마는, 문은 이미 닫혔네. 자네들을 내가 알지 못하네.” 그러면 문 밖의 사람들이, ‘왜 이러십니까? 주님의 식탁 (아마도, ‘성찬식’?) 에서 우리가 수도 없이 함께 음식을 나눴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또 얼마나 많이 들었다구요? 주님도 아시잖아요, 저희가 거기 앉아 있었던 것을?’

그러나 주님은 “난 너희를 모른다. 이 악을 일삼는 자들아, 썩 물러가거라.”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매몰차십니다. 하지만 어떻게 합니까? 이미 은혜로 우리 손에 쥐어 주려 하셨던 ‘회개와 믿음’ 이라는 ‘구원의 문’ 열쇠를 거절했던 것을..

<기도> 주 하느님, 주님의 은혜로 구원의 문 열쇠를 저희 손에 받아 쥐고 있게 하소서. ‘회개와 믿음’으로 열리게 될, 최종의 구원의 문에서 만나 뵈올 주님을, 저희가 마음 깊이 사모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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