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롭게 살기로 결심한 ‘삭개오 형님’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 1 } 하박국서 1장 2-4절. [2]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시고, “폭력이다!” 하고 외쳐도 구해 주지 않으시니, 주님,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3] 어찌하여 나로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보기만 하십니까? 약탈과 폭력이 제 앞에서 벌어지고, 다툼과 시비가 그칠 사이가 없습니다. [4]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합니다. 악인이 의인을 협박하니, 공의가 왜곡되고 말았습니다.

**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장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정치인들이 상대 정당을 향해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라고 서로 언론과, 여론과, 사회와, 법정에 고발을 합니다. 세상 법정이, 과연 누가 정의의 편인지 가려 줍니까?

그래서 동창들의 카톡채팅방에서도, 교우들의 채팅방에서도, 성직자들의 채팅방에서도 서로 자기들이 정의의 편이라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편을 가릅니다. 서로 심판하지 맙시다.

{ 2 } 데살로니가후서 1장 6-8절. [6] 하나님은 공의를 베푸십니다. 여러분을 괴롭히는 자들에게는 괴로움으로 갚아주시고, [7] 괴로움을 받는 여러분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아주십니다. 이 일은 주 예수께서 자기의 권능 있는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8] 불꽃에 싸여 나타나셔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처벌하실 때에 일어날 것입니다.

** “공의의 하나님”(6절)이시라면,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불의, 전쟁, 약탈, 불법들을 심판해 주신다는 말씀은 있을만 한데도, 없습니다. 다만 ‘복음을 믿지 않은 것’ 그것 하나를 처벌하신다고요? (8절 참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심판은 반드시 있을 것인데, 모든 죄악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큰 죄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복음을 믿는 사람들을 괴롭히던 자들의 죄일 것입니다.

{ 3 } 누가복음서 19장 8-10절. [8] 삭개오가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9]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10]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 예수님의 정의실현은 심판의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이 영적으로 거듭나게 됨으로 이루시는 정의실현이었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시고, 주님의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인격에서 새 빛을 보았습니다. 동포들에게 매일, ‘매국노’라고 지탄 받으며, ‘죄인’ 취급을 받고 살던 자기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계신 예수님에게서 새 소망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윽고 예수님과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결심을 토로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던 방식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 살기로 작정합니다. 남의 것을 속여서 빼앗은 것은, 네 배로 갚겠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제 재산의 절반을 나누어 주겠습니다.” 그는 ‘의인’ 소리를 듣고 싶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새 사람이 되고 싶은 열망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왠지 가슴 속에서부터 기쁨이 샘 솟았습니다. 진정한 회개로 하나님 나라가 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은, 자비와 용서와 오래 참으심으로(롬2:4) 세상을 다스리신다 했습니다. 사람을 감화 감동하셔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믿음의 사람, 의의 백성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세월이 많이 걸릴 것 같아도, 이것이 세상을 바꾸어가시는 확실한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자비의 하나님, 관용과 오래 참으심으로 저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 앞에 굴복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저희도 거룩하게 살며, 저희도 의롭게 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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