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누가복음서 20장 34-38절 (새번역)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지만, [35] 저 세상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참여할 자격을 얻은 사람은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는다. [36] 그들은 천사와 같아서, 더 이상 죽지도 않는다. 그들은 부활의 자녀들이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37] 죽은 사람들이 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 보여 주었는데, 거기서 그는 주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라고 부르고 있다. [38] 하나님은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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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려서는, 옆집 아저씨를 ‘영철이 아버지’ 라고 불렀고, 앞집 아주머니는 ‘덕원이 엄마’ 로 불렀습니다. 직접 어른 이름을 부르는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영철이나 덕원이를 알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을 앞세우고, 아무의 아버지, 아무의 엄마로 호칭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많이 그렇게 부르며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호칭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라고 한 것도 마찬가지로, 이들 족장의 이름을 따서, 그 부족이 섬기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족장 한 분의 이름으로 된 것이 아니고, 병렬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길게 부르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주님께서 그 대답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고, 산 자의 하나님이라는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38절)
이미 아브라함은 주전 1800년 경에 죽었고, 이삭이 주전 1760년 경, 야곱이 주전 1690년 경에 죽었는데, 그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산 자들의 하나님” 이시기 때문에 이런 호칭을 쓰고 있었다고 한다면, 어폐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 의미를 바로 새겨야 합니다. ‘산 자’ 라는 말은 ‘육신이 살아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살아 있는 사람’ 곧 ‘영혼이 지금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저희 가계에 복음이 들어오게 된 것은 할머니 때였습니다. 그래서 “할머니 정대옥의 하나님, 아버지 이재면의 하나님, 이요셉의 하나님, 딸-아들 이유로-이요한의 하나님, 손주들 현세영-이희상-이민상의 하나님”이라고 말입니다.
좀 길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많이 구체적이고, 실제적이어서 어떤 하나님이신지가 분명해집니다. 우리 가계를 대대로 인도해 오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이지 않습니까? 만약,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호칭할 수 있는 은총을 입은 집안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살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백성이 된 사실을 믿고 살기만 하면, 저희의 가계가 대대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호칭하고 살 수 있게 해 주셨사오니 감사 드립니다. 저희의 영혼이 날마다 살아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