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라면, 이런 자세로 일하지 않는가!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누가복음서 17장 7-10절 (새번역)

[7] “너희 가운데서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다고 하자. 그 종이 들에서 돌아올 때에 ‘어서 와서, 식탁에 앉아라’ 하고 그에게 말할 사람[주인]이 어디에 있겠느냐? [8] 오히려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너는 허리를 동이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야,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 그 종이 명령한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을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우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여라.”

* * * *

약 15년 전, 아시아의 C국가를 선교여행하던 때의 일입니다. 그 나라 지방도시를 기차로 여행하는데, 완행표를 미리 예매했기 때문에, 출발시간을 넉넉히 앞두고 역으로 갔는데, 사람이 대단히 붐비고 있었습니다. 평일이었는데도 지방으로 떠나는 여객이 그렇게도 많았습니다.

역원들이 나와서, 빽빽하게 광장에 들어찬 여객들을, 열을 지어 세우려고 호각을 불며 호령, 호령을 하며,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이 워낙 많으니까, 통제가 불가능하였습니다. 역원은 상비하고 있었던 듯, 기다란 대나무 막대기를 들고, 여객들의 머리 위에서 좌우로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대나무에 맞을까봐 사람들이 모두 자세를 낮추어 콘크리트 바닥에 앉았습니다.

저도 점잖은 체면에, 남의 나라에 와서, 대나무로 얻어맞을까봐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 자세로 한참을 앉았노라니, ‘무슨 이런 나라가 다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무원을 ‘공복’ (여러사람을 섬기는 종) 이라고 통상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종이 주인을 몽둥이로 다스리다니 말이 되는가 말입니다. 이런 수모를 백성에게 주면서, 나라 잘 되기를 바라는, 우민정책의 주모자인, 그 C국의 통치자가 어리석게 보였습니다.

‘선교’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당하면서 다니다가, 선교본부로 돌아와서 동역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바로 이 성경본문을 펴고, “우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말씀을 나누고 기도를 했습니다. 자책이 되는 일이 생각났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때로 제 뜻대로 일이 잘 안 풀릴 때에는, ‘대나무 몽둥이를 휘둘러’(?) 저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욕보인 것 같은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말로, 또는 행동으로,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무엄하게 굴지는 않았는가 반성이 되었습니다.

뭔가 숫자로 성과가 좀 있었다 싶을 때에는, 두 발을 뻗고, 하나님 앞에 턱을 쳐들고 ‘오늘은 저를 좀 인정해 주시면 안 되나요?’ 라는 건방진 자세를 보였을 것이라는 자각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 날도 너는 종이니, 돌아 오면 대접 받을 생각은 말아라. 먼저 주인님께서 저녁 잡숫게 시중들고 나서, 너는 나중에 먹고, 쉬거라.” 이것이 바른 질서라고 하십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목숨을 바치신 주님 앞에, 저희는 항상 빚진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어떤 수고를 했어도, 그것은 저희의 공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에 대한 저희의 마땅한 삶의 자세일 뿐이오니, 주여, 저희의 섬김을, ‘부족한 예배’로 어여삐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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