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고린도전서 3장 18-23절 (새번역). [18]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거든, 정말로 지혜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9] 이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리석은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신다” 하였습니다. [20] 또 기록하기를, “주님께서 지혜로운 자들의 생각을 헛된 것으로 아신다” 하였습니다. [21] 그러므로 아무도 사람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상이나, 삶이나, 죽음이나, 현재 것이나, 장래 것이나,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23]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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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우리의 믿음의 선대들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 곧 복음의 진실성을 증거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마태복음 서두에서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 구세주가 탄생하리라는 예언을 중요하게 다뤄, 다윗의 족보 연구를, 기독론의 핵심주제로 삼았습니다. 또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것이, 구세주의 강림의 결정적 징조라는 예언을 중요하게 다뤄, 이를 입증하는 일을 앞세웠습니다. 두 가지가 다 중요한 연구이기는 하지만, 세상은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은, 고대 희랍 철학에서 말하는, 세상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 허상이요, 실상은 하늘의 ‘이데아’의 세계, 곧 신들의 세계라는, 이원론적 설명을 원용해서 “말씀이 육신을 입었다”는 명제로 기독론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이렇게, 성자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을 알아듣는 이들도 있었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못했습니다.
히브리서는, 유대인들의 제사법에 바탕을 두고, 대제사장으로 단 한 번의 속죄제사를 드리신 예수님, 또 만민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러 대속의 제물로 목숨을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려 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그 어느 기독론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에 가까운 설명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의 구약신학, 희랍의 철학 등 당대의 모든 형이상학에 정통하던 학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지식을,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도구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 밖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고전 2:2) 라고 했습니다.
과연 고린도전서를 기록하던 무렵(주후 60년) 부터, 바울은 그의 편지들에서, ‘십자가 복음’ 을 중심으로 한 기독론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미 모든 기독론의 검증을 끝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래로, 복음은 십자가로 설명되고, 십자가는 복음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보기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십자가에 보내신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세상의 어떤 신화, 어떤 철학, 어떤 문학으로도 상상해 보지 못했던 일, 하나님이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목숨을 내어놓으셨다는 이 ‘하나님의 지혜’ 가 우리들의 복음입니다.
<기도> 십자가로 저희를 구원하신 주 하나님, 십자가에서 저희도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게 하옵소서. 저희가 져야 할 십자가도 있음을 감사 드립니다. 그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저희도 충실히 그리스도를 따르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