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잘 지키기 — <2> 장애인을 배려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이사야서 29장 18-21절 (새번역). [18] 그 날이 오면, 듣지 못하는 사람이 두루마리의 글을 읽는 소리를 듣고, 어둠과 흑암에 싸인 눈 먼 사람이 눈을 떠서 볼 것이다. [19] 천한 사람들이 주님 안에서 더없이 기뻐하며 사람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다. [20] 포악한 자는 사라질 것이다. 비웃는 사람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죄 지을 기회를 엿보던 자들이 모두 끝장 날 것이다. [21] 그들은 말 한 마디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성문에서 재판하는 사람을 올무에 걸리게 하며, 정당한 이유 없이 의로운 사람의 권리를 박탈하던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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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의 수가 대략 인구의 10%라고 합니다. 중도장애인까지 포함하면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어떤 사람들은 자기 집안에 장애를 가진 이가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길에서 장애인을 만날 수 있는 숫자는 실제 숫자에 비하면 적게 보일 수가 있습니다.

시각장애를 지닌 사람은 쉽게 분별합니다. 하지만 청각장애인들은 어떤 경우 아니면, 쉽게 못알아봅니다. 교통장애를 지닌 분들이 상당수에 달하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실제로 사회가 장애인에 대해 배려하고 있는 수준에 비하면, 교회는 한창 뒤떨어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성탄절은 명절이기 때문에 많은 행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행사였든지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가 대단히 부실합니다. 하지만 성탄절 만큼은 장애인 우선적인 배려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장애인 자신이나, 장애인의 가족들이 주장하기가 힘든 일입니다. 그러므로, 행사를 담당하고 있는 교우들이 이 어려움을 지니신 이들에 대해 배려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누가 장애인이고 누가 비장애인입니까? 하나님 보시기에는 모든 사람이 장애인으로 보이신 때가 있었습니다. “너희가 듣기는 늘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못한다. 너희가 보기는 늘 보아라. 그러나 알지는 못한다.” (이사야 6:9) 영적으로는 세상사람 모두가 장애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비장애인이라고 장애인을 차별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면서, 특수층 인간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만민을 대속하시기 위해, 만민 가운데 가장 비천한 계층으로 오셨습니다. 태어나시자마자 말구유에 누이셨고, 젖먹이로 난민 생활을 하셨습니다. 목수 집안에서 자랐으며, 당신 스스로도 목수가 되셨습니다.

제 친구가 교회를 개척하던 시절에, 성탄절을 맞이하여, 20명도 안 되는 온 교우들과 함께 장애인 시설로 가서 그들과 더불어 1박2일로 성탄행사를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짧은 마임극을 비롯해서, 악기 연주, 합창 등 아기자기한 프로그램과 간단한 성탄선물도 마련해서 함께 지냈습니다.

성탄절을 맞으면서, 주님께서 인류를 철저히 섬기신 자세를 배우도록 합시다. 이번 우리들의 성탄절 행사야 말로, 장애인들과, 또 별도의 배려를 요하는 분들을 위한 뜻깊은 성탄절로 지내면 좋겠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죄로 말미암아 영혼에 병든 저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셨음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저희의 성탄절도, 하나님의 이 섬김의 뜻을 담은 명절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낮은 곳에 처한 이들을 위해, 저희도 한껏 배려와 섬김의 본을 따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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