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잘 지키기 — <4> 예수님의 자리를 마련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누가복음서 5장 17-21절 (새번역). [17] 어느 날 예수께서 가르치시는데, 갈릴리 및 유대의 모든 마을과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교사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주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므로, 예수께서는 병을 고치셨다. [18] 그런데 사람들이 중풍병에 걸린 사람을 침상에 눕힌 채로 데려와서는, 안으로 들여서, 예수 앞에 놓으려고 하였다. [19] 그러나 무리 때문에 그를 안으로 들여놓을 길이 없어서, 지붕으로 올라가서, 기와를 벗겨 그 자리를 뚫고, 그 병자를 침상에 누인 채, 무리 한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렸다. [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이 사람아, 네 죄가 용서받았다.” [21] 그래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말하기를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다니, 이 사람은 누구인가? 하나님 한 분 밖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는가?” 하면서,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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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복음(막2:1 이하)에는 가버나움에서의 일이라 했습니다. 거기에,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교사들 여러명이 예수님 앞에 진을 치고 둘러앉아 있었다 했습니다 (본문 17절). 그들은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에서 책잡을 시비거리만 찾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가장 측근에서 가장 방해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2천 년 전에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교사들이었다면, 지금은 누구일까요? 예배 때에는 성소 주변에 자리를 차지하고, 교회 일을 좌지우지하면서, 교리와 신학을 자기 생각대로 장난질하는 자들입니다. 하늘나라를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다른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자들인 것이지요 (마23:13).

세상을 구원하시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어 오실 때에, 하나님 아버지와 더불어 얼마나 비장한 마음으로 이 일을 결정하셨겠습니까? 그러나, 사랑이 크신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일을 결행하셨습니다. 죄많은 우리 인간들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놀랍고 고마운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이 대림절은 “기쁘다 구주 오셨네” 찬양에 앞서서, 먼저 내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임하신 예수님을 경건한 마음으로 영접하며, ‘내 죄’ 를 회개하는 일이 앞서야 합니다. 이것이 마땅한 이치이며, 자연스런 순서입니다. 하나님의 아드님이 들어오셔서 좌정하실 자리를 내 집에, 내 마음 속에 마련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유대인 사회에서 여지없이 내몰고자 했던 대제사장이나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율법교사들 처럼, 예수님께 촌치의 자리도 내어 드리지 않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비록 내 집 지붕이 좀 상해도, 주님을 만나러 오시는 분을 위해서라면, 그의 일을 우선시해 주는 자세가, 성탄을 올바로 맞이하는 자세일 것입니다.

고 나운영 선생이 작사 작곡한 ‘마리아의 자장가’ 가 있습니다. “가난한 여인, 가난한 어머니, 한 아기를 낳았으나, 뉘일 곳이 없어서, 말구유에 뉘셨네, 흰 강보로 싸서, 말구유에 뉘셨네, 말구유에 뉘셨네.”

<기도> 저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시여, 말구유에 눕지 마옵소서. 제 누추한 집에 들어 오시고, 저의 비좁은 마음에라도 들어오시어, 영원토록 제 집의 주인, 제 마음의 주인이 되시고, 저를 구원하옵소서.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힘입어,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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