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마가복음서 2장 14-17절. [14]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레위는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갔다. [15] 예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들도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한 자리에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이 예수를 따라왔던 것이다. [16] 바리새파의 율법학자들이, 예수가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울려서 음식을 먹습니까?” [17]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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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어느 곳에서 ‘죄인을 찾는 사람’ 을 만났다면, 그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전과가 있는 사람을 찾아서 뭘 하겠다는 말입니까? 가령, 그들과 ‘프로페쇼널’ 그룹을 만들어서, 크게 범죄 한 건을 하고 싶어서 전과자들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 상상하십니까?
그 정 반대의 경우입니다. ‘의인 행세를 하는 사람들’ 보기가 싫어서, 죄인을 찾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본래는 하나님이시지만, 인류를 구원하시러 인간이 되시어 인간세상에 오셔서, 30여 년 사셨던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이셨습니다. 그 분은 소위 ‘죄인’들과 어울리기를 즐기셨습니다.
당시의 ‘죄인’이라 함은, 태어나기를 이방인(유대인이 아닌 사람)으로 태어났거나, 이방인과 피가 섞여 태어났거나, 직업이 천하거나, 불치의 병을 앓거나, 유대인의 율법 (안식일법을 포함) 을 지키지 않아도 유대인들이 별로 상관할 필요가 없는 정도의, 구원 받기를 아예 포기한 사람들로 여겼던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이었습니다.
죄인으로 낙인이 찍히면 그것 자체로도 살기가 힘들지마는, 그가 알던 친구들이 떠나갑니다. 떠나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외롭습니다. 그것이 죄인들이 당하는 상황입니다. 죄인이 죄인과 어울리면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하지만 죄인도 죄인을 멀리하고 싶어합니다.
이런 분들을 예수님은 친구 삼기를 즐기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그 누구보다 고결하시고, 신령하셨지만, 죄인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죄인들을 외면하는 태도는 바리새파 사람들의 습관이었는데, 예수님은 그들의 관행을 아주 경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구세주이심은, 그가 늘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심에서 드러나셨습니다. 그가 죄인들의 친구였음을 보고 우리는 그가 구세주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예수님께서 저와 같은 죄인을 2천 년 전에 찾아 만나기를 즐기셨다 하오니,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저와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하니, 더욱 저의 마음을 다해 찬양을 드립니다. 죄인들의 친구가 되신 예수님, 오늘도 성령을 통하여 구세주로 저희에게 임하셔서, 존귀와 영광을 받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