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마가복음서 9장 30-34절. [30] 그들은 거기에서 나와서, 갈릴리를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남들이 알기를 바라지 않으셨다. [31] 그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고, 사람들이 그를 죽이고, 그가 죽음을 당하고 나서, 사흘 후에 살아날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씀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32]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고, 예수께 묻기조차 두려워하였다. [33] 그들은 가버나움으로 갔다. 예수께서 집 안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너희가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느냐?” [34] 제자들은 잠잠하였다. 그들은 길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것으로 서로 다투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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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려운 것을 가르치셨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고등수학을 가르치신 것도 아니고, 라틴어나 희랍어로 가르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알아듣지도 못했고, 모르는 것을 묻지도 않았다’ 고 본문 32절은 말합니다.
제자들이 이런 형편없는 태도를 가졌는가 의아한 감도 드는데, 오늘의 본문은 그 이유를 부연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우고, 죽임을 당하나, 사흘만에 다시 사실 것’(31절) 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묻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을 말씀하시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을 당하려고 예수를 따라 나섰던 것인가 의혹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바랐었습니까? 스승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고 하니까, 장차 그 왕국이 건설되면, 뭔가 큰 벼슬 하나라도 할 것이라는 속셈이(본문 33-34절) 있었던 것일까요?
그런데 왕국은 커녕, 죽게 된다는 말씀을 하시니까, 만정이 떨어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십자가를 지는 일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신 예수님으로서는, 예루살렘의 권세가들에게는 비밀로 할 망정, 제자들에게까지 감출 이야기는 아니어서, 똑같은 수난예고의 말씀을 세 차례 씩이나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솔직이 저는 ‘이지 고우어’ (쉽게 가는 사람)의 하나입니다. 어려움이 예상되면, 될수록 일찌감치 그 길을 피합니다.
어떻게 쉽게만 갑니까? 이가 아파오면, 빨리 치과에 가야 하는 것이고, 태 안에 아기를 품은 사람은 때가 오면 해산의 모진 진통을 겪어야 하는 것이고, 인류의 죄의 문제를 안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대속의 어린양이 되신다는 말씀은 ‘순리’입니다.
사순절이 내일부터 시작됩니다. 전능의 하나님께서 왜 아드님을 십자가로 보내셔야 하는지는, 누구에게나 의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죄를 묻는 대신에 아드님께 대신 죄를 물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속성은 “나에게도 묻지 말고, 나 대신 누구에게 내 죄를 추궁할 필요도 없다” 고 당돌하게 대들곤 합니다.
하지만 이 사순절에 누구든지, 비록 괴롭더라도 자기의 죄의 문제를 기도의 가장 앞서는 주제로 삼고, 하나님 앞에 서기를 교회는 권합니다. 하나님을 기다리시게 하지 말고, 우리 각자가 ‘일대 일’로 하나님을 만나러 골방으로 들어가기를 권합니다. 들어가서, 정녕 하나님 앞에 내가 털어놓지 못했던 죄가 있다면 고백하라고 합니다.
“제게 무엇이 유감이셨습니까? 하나님, 모두 말씀해 주세요. 이제 제가 듣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제가 하나님을 맞대면하는 일이 두렵지 않게 해 주세요.” 이렇게 하나님과 화해하는 시간을 가집시다. 이것이 사순절을 마련하신 하나님의 소원이십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과 일대 일로 만나시고자 사순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부족함과 죄악을 모두 사함 받고, 진정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를 원합니다. 주 성령 안에서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