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묵상 <8> ‘교파주의’를 회개하자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고린도전서 3장 4-9절. [4] 어떤 사람은 “나는 바울 편이다”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나는 아볼로 편이다” 한다니,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5] 그렇다면 아볼로는 무엇이고, 바울은 무엇입니까? 아볼로와 나는 여러분을 믿게 한 일꾼들이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각각 맡겨 주신 대로 일하였을 뿐입니다. [6]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7] 그러므로 심는 사람이나 물 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요,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8] 심는 사람과 물 주는 사람은 하나이며, 그들은 각각 수고한 만큼 자기의 삯을 받을 것입니다.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밭이며, 하나님의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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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말씀 묵상’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는 감리교 분들을 비롯해서, 로마 가톨릭, 성공회, 장로교, 그 밖의 여러 교파에 속한 분들이 계심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제가 간혹 제가 속한 교회의 분위기를 띄우는 말씀을 드릴까 봐, 조심스럽습니다마는, 언제나 양해해 주시고, 자기가 속한 교회의 입장에 맞도록 해석하며 읽어 주시고 계시기 때문에, 저는 그저 마음 놓고 글을 쓸 수가 있습니다.

본래 교회사를 보면, 교회가 쪼개질 때마다 마치 분열이 불가피한 듯이 쪼개지곤 했습니다마는, 그건 ‘육에 속한 이들의 행위’였습니다. 실상 ‘육에 속한 요소’ 들을 제하고 보면, 우리가,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믿음을 공유하고 있는 한, 모두 ‘한 집안’에 속한 믿음의 권속들입니다.

로마의 전통을 귀히 여기면 로마 가톨릭이 되는 것이고, 영국의 전통을 귀히 여기면 성공회가 되는 것이고, 웨슬레의 전통을 귀히 여기면 감리교, 존 칼빈의 전통을 귀히 여기면 장로교가 되어 있을 뿐입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 받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한, 어느 특정의 교파만에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늘 나라에 가서도 성경본문을 찾아 읽는 시간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때 가서도 ‘새번역’으로 읽느냐, ‘개역’ 이나, ‘개역개정판’으로 읽느냐며 혼동을 일으키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 표기가 ‘하느님’으로 되어 있어서, 그런 성경은 여기서는 안 쓴다 할 사람도 없을 것이 분명합니다.

모두는 편안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할 것이며, 모두는 나운영 선생의 곡조로 부르든, 다윗왕의 곡조로 부르든, 은혜롭게 시편 23편을 노래하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장로교 목사의 집안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장로교 예배가 익숙합니다. 하지만 성공회 예배에서도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지금은 성공회 예배에도 익숙합니다. 하지만, 코로나 3년 동안 적지 않게 TV에서 감리교나 장로교 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렸는데,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이 사순절에 ‘교파주의자’ (예수님보다 ‘교파전통’을 중요시하는 사람) 의 탈을 제가 쓰고 있었다면, 이를 벗어버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특별히 성직자가 교파주의를 없애는 일의 큰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느냐’ 하면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지만, 우리가 ‘누구를 믿느냐’ 고 물을 때에는 분열이 오지 않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의 부족함으로 수 백 개의 교파로 나누어 버린 ‘한 몸 된 교회’를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서, 다시 하나를 이루어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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