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시편 79편 9-13절. [9]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는 하나님, 주님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생각해서라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주님의 명성을 생각해서라도 우리를 건져 주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10] 어찌 이방인들이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서 비웃게 버려 두시겠습니까? … [11] 갇힌 사람들의 신음소리를 주님께서 들어 주십시오. 죽게 된 사람들을 주님의 능하신 팔로 살려 주십시오. [12] 주님, 우리 이웃 나라들이 주님을 모독한 그 모독을 그들의 품에다가 일곱 배로 갚아 주십시오. [13] 그 때에 주님의 백성, 주님께서 기르시는 양떼인 우리가, 주님께 영원히 감사를 드리렵니다. 대대로 주님께 찬양을 드리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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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예의범절이 바른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대들이 자식들을 양육하실 때에, 서당이나 학교에 가서 글을 배우기 전에, 집안에서 어른들에게 예절을 배웠습니다. 절하는 법, 공손하게 어른 앞에서 말씀을 드리는 법, 안고 일어서는 예절, 이런 모든 것들을 배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서양문화가 우리 나라에 들어오고, 남녀노소가 평등하다는 정신을 배우면서부터는 과거에 선대로부터 배운 예절의 의미와 가치가 점점 퇴색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옛 예절은 점차 자취를 감추어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어른의 함자를 말할 때에, 함부로 말하지 않기 위해서 “무슨 자, 무슨 자를 쓰십니다” 고 말하는 습관은 지금도 간신히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예절의 관습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지 말라”는 성경의 계명을 지키는 데에, 퍽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언어의 예절도 점차 흐려져가면서, 하나님의 함자를 존귀히 여기는 일에 있어서도 흠집들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보입니다. ‘하나님’으로 불렀든, ‘하느님’으로 불렀든, 뒤에 ‘님’자가 붙어 있어 다행이지, 실상 하나님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부르지 못하는 경향을 봅니다.
가령 어떤 특정 운동선수를 일컬어 ‘배구의 신’ 아무개, ‘축구의 신’ 아무개, ‘야구의 신’ 아무개, 이런 호칭들을 자주 듣습니다. 운동선수의 위세를 드높이려는 의도에서는 적합했는지 몰라도, 하나님의 위격을 많이 손상시키는 일입니다.
이 밖에도, 우리는 거룩한 이름을 써서는 안 될 데에다 함부로 쓰는 예도 많이 생겼습니다. ‘이건 하나님도 어쩌지 못해’ 라고 쉽게 말합니다. 하나님께 능치 못한 일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심지어, 영어에서 ‘Holy Jesus’ 가, 글자의 의미로는, ‘거룩한 예수’ 라는 뜻인데, 실제로는 우리 말의 ‘제기랄’에 해당합니다. 우리 말에도 영어권 못지 않게, ‘하나님 맙소사’ 가 ‘한심하구먼’ 이라는 뜻으로 터를 잡고 말았습니다.
불신앙적인 ‘하나님 호칭’의 용법은, 우리들의 일상의 대화에서도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게 만들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훼방하는 일로 내달리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의 화법에서 경홀히 여김을 받고 계십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히 받들 때에라야,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됩니다.
<기도> 주 하나님, 온 세상에서 영광과 존귀를 받으실 하나님께서, 도리어 천대와 모멸을 받고 계심을 용서하옵소서. 저희 믿는 사람들에게서 먼저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그리하여 마침내 온 세상에서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