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마태복음 20장 17-21, 24절. [17]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열두 제자를 따로 곁에 불러놓으시고, 길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18] “보아라,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들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이며, [19] 그를 이방 사람들에게 넘겨주어서,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달아서 죽게 할 것이다. …”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아들들과 함께 예수께 다가와서 절하며, 무엇인가를 청하였다. [21] … “나의 이 두 아들을 선생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해주십시오.” … [24]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에게 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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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평소에 가까이 지내던 치과의사가 있습니다. 그분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치과의사들이 서로 만나면, 가끔 치료 도중에 마취를 했는데도, 아프다고 못견뎌 하는 분들이 있어서, 그들의 통증이 어디까지가 진실이냐 하는 토의를 가끔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통증은 실제의 통증보다는, 상상력이 강한 사람이 신음하며 아픔을 호소한다고 말합니다.
상상력이라면, 우리 예수님을 따를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마도 예수님의 십자가 진통은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길에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정작 예수님의 진통은 손바닥과 발잔등에 박혀 들어오는 대못 때문이 아니라, 인간들에게서 당하신 배반과 무심한 자세에서 못 견딜 아픔을 느끼고 계셨을 것으로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길에서, 이제 예루살렘에 가시게 되면,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 의해서 체포될 것이고, 이방 사람 곧 로마제국의 총독에게 넘기워, 불법한 재판을 받게 될 것이고, 십자가형을 당하여 죽게 될 것을 수 차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실 때에, 가슴이 저며오는 아픔으로 말씀하셨지, 남의 이야기 처럼 한가하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이 말씀을 귀담아 듣고 있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무심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제자들 중, 비교적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자타가 공인하던 요한, 그리고 그의 형이 그들의 어머니를 대동하고 예수님께 다가와서, 이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셔서, 왕위에 오르시게 되면, 우선적으로 그들 형제를 높은 벼슬 자리에 책봉해 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진정 배반의 아픔을 가슴으로 느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장차 당하실 십자가의 고통을 실제인 것으로 바라보면서, 쓰라린 가슴으로 계신데, 그의 가장 측근이라는 자가 엉뚱한 부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벌써 제자들의 배반은 요한 형제들에 의해서 예견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24절에서 제자들이 반목질시하며 암투를 벌이고 있었다는 내용을 아무런 가감없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에게 분개하였다” 하였습니다. 우리 인간들의 적나라한 모습입니다.
마치, 해산을 앞둔 아기 엄마는, 지금 해산의 진통의 염려로 가득 차 있는데, 다른 가족들은 히히덕거리며, 전혀 고맙지 않은 잡담을 늘어 놓는 것과도 흡사하다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이기심에 가득찬 제자들의, 인정머리 없는 시기와 질투를 바라보면서, 한없는 외로움과 배반감에 가슴 아파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기도> 주 예수님, 고통스런 수난을 눈앞에 두고 계시던 때에도, 이기적인 계산을 하고 있던 제자들을 바라보시던 주님을 생각하면서 저희가 회개합니다. 저희의 매정스럽고 이기심에 가득찬 근성을 버리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드리려고 애쓰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