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마태복음 18장 28-30, 32-34절. [28] 그러나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나자, 붙들어서 멱살을 잡고 말하기를 ‘내게 빚진 것을 갚아라’ 하였다. [29] 그 동료는 엎드려 간청하였다.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 하지 않고, 가서 그 동료를 감옥에 집어넣고, 빚진 돈을 갚을 때까지 갇혀 있게 하였다. …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다 놓고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애원하기에, 나는 너에게 그 빚을 다 없애 주었다.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 [34] 주인이 노하여, 그를 형무소 관리에게 넘겨주고,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가두어 두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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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다투던 두 사람이 다 예수님 앞으로 불려나왔다고 합시다.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제 생각으로는, 원인제공자에게도 벌을 내리시겠지만, 용서를 안 한 사람을 예수님께서 더 벌 내리셨을 것이라고 봅니다.
저희 형제는 모두 일곱 남매였습니다. 저만 빼놓고는 모두 착했습니다. 하지만 형제가 그렇게 여럿이니까 때때로 큰 소리 나는 일이 왜 없었겠습니까? 부모님께 송사하는 일은 별로 없었지만, 현장을 부모님께 들키게 되면, 부모님은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둘을 다 불러놓고, 경위를 들으십니다.
그러면 갑이 이랬고, 을이 저랬다고 설명이 대충 됩니다. 그러면 둘 다 벌을 받는데, 더 가중처벌을 받는 쪽은 원인제공자보다 용서하지 못한 쪽이곤 했습니다. 우리는 억울하다는 소리를 가끔 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판단은, 원인제공자가 누구냐보다, 용서하지 못한 쪽을 문제있게 보시곤 했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그것이 못마땅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우리는 그것이 복음적인 생각이라고 보였습니다. 원인제공자를 엄격히 따지고 올라가면, 결국 어머니 아버지의 탓으로까지 번져 올라갈 수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슨 말을 하냐구요? 따지고 들면, 아버지 어머니가 형제를 일곱 씩이나 낳으시지 않았더라면, 다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 아니냐는 논리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하여간 지금 나이가 되니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되었는데, ‘용서를 안 한 사람’이 더 못된 놈이라는 원칙은 없었지만, 그런 경향의 부모님이셨다는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화폐로, ‘한 달란트’가 노동자의 15년 품삯이라고 하니까, 현재 우리나라 1년 품삯을 3천만원 정도로 친다면, 4억 5천만원이 됩니다. 그런데 ‘만 달란트’ 빚진 사람이라면, 4조 5천억원을 빌렸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 엄청난 돈을 빌릴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더구나 그런 돈을 빌려 준 사람은 얼마나 돈이 많은 부자이겠습니까? 예수님의 스케일은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그 빚을 탕감했다니요! 그렇게 우리가 탕감 받은 죄의 스케일이 크다는 말씀이 됩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가 용서할 남의 잘못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게 작은 것이니, 뭐 힘들게 용서하지 말고, 넉넉하게, 맘껏 용서하라는 교훈이십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용서받은 것이 천문학적 분량인 것을 알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가 저희 이웃을 용서할 때에 인색히 굴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