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누가복음 18장 10-14절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새파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새파 사람은 서서, 혼자 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남의 것을 빼앗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와 같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며, 더구나 이 세리와는 같지 않습니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런데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 내고, 가슴을 치며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서 자기 집으로 내려간 사람은, 저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이 세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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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이 이제 절반을 넘었습니다. 우리들의 ‘사순절 기도’, 특별히 ‘회개의 기도’가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저는 많이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중도에 포기는 하지 마십시다. 진정한 회개의 기도 딱 하루만이라도 온전한 회개의 기도를 드릴 수 있다면, 40일 전체가 아름다워지고 가치있어질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어떤 바리새파 사람의 기도를 보면, 그는 극히 자기 중심적인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 자기 자랑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그의 실제생활과 별 차이가 없다면, 하나님께서 꾸중은 않으시겠지만, 듣기에 퍽 불편하실 것입니다.
바리새파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으시라는 기도 같아 보이지 않고, 사람이 들으라고 소리내어 기도하고 있는 듯한데, 남을 비난하는 기도문마저 들어 있지 않습니까? “저는 저기 저 세리와는 다릅니다. 하나님도 아시지요?” 이것을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세리의 기도는, 우리들도 본받아야 할 기도입니다. 그는 자기 중심적인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저 때문에 얼마나 속을 태우십니까? 저는 죄인입니다. 정말 소망 없는 죄인입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패턴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모의고사 채점지를 본인에게 돌려 주시듯, 각자의 기도를 구체적으로 평가해 주셨습니다. “저 바리새파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외면하셨다. 그리고 저 세리의 기도는 받으셨다.” 이렇게 채점표를 공개하신 것입니다.
저는 아침기도에서 빼놓지 않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푸틴이 제발 회개하게 해 주세요. 중국의 시진핑도, 북한의 김정은도 모두 회개하게 해 주세요. 그들이 회개 안 하면 아예 역사에서 소멸시켜 주세요” 이런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것 역시 바리새파 사람의 기도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회개할 일은, 제가 기도하기 훨씬 이전부터 하나님께서 안타깝게 기다리고 계셨던 일이었습니다.
다만, 저는 조용히 세리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심중에, 저를 바라보시는 시선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통절한 회개의 기도만 바치고자 합니다.
<기도> 주 하나님,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부터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사는 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인 것을 깨닫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