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누가복음 2장 43-44, 46-49절. [43] 그런데 그들이 절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에,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그의 부모는 이것을 모르고, [44] 일행 가운데 있으려니 생각하고, 하룻길을 갔다. … [46] 사흘 뒤에야 그들은 성전에서 예수를 찾아냈는데, 그는 선생들 가운데 앉아서,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47]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슬기와 대답에 경탄하였다. [48] 그 부모는 예수를 보고 놀라서, 어머니가 예수에게 말하였다. “얘야, 이게 무슨 일이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느라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 [49] 예수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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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소년 예수의 실종사건은 예수님께서 열두 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비록 나이는 어렸어도, 예수님께서는 장차 메시아로서 담당하실 무거운 책임을 마음 속에 다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에 가셨을 때에 성의 이곳 저곳을 살펴보았을 것이고, 그곳에서 장차 있을 십자가 처형의 일도 마음속에 준비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특별히 그곳에 진을 치고 있는 율법학자들과, 대제사장을 보위하고 있는 성직자 무리들의 영적 자세를 세심히 살피셨을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받드는 헌신의 자세가 바로되어 있는지, 백성을 향한 지도력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에서의 대화가 ‘영재 예수’ 가 아니라, 하나님의 대언자로서의 질문을 던지고 계셨을 것입니다.
( 2 ) 지금처럼 스마트폰으로 부모님과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갈릴리 나사렛 마을까지의 여행길 어딘가에서 친척들과 함께 동행하겠거니 생각했던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예루살렘 성전까지 다시 올라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생김생김과 복장을 설명하며 헤맸을 것입니다.
성전까지 가서야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사흘 동안 애태우던 생각을 하면, 화가 무진 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만나자마자, 마리아가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느라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 고 했던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왜 모르셨단 말입니까?” 라고 했는데, 이것은 자칫 말대답질로 들립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심정은 더 깊은 곳에서 아픔을 느끼면서 지난 며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무책임하고 이기심 투성이인 성전 지도자들이, 결국 20년 이후에 자기를 처형할 자들이라는 사실을 내다보면서, 영적 전쟁과 같은 치열한 대화를 나누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이 아무리 애를 태웠기로서니, 소년 예수께서 메시아의 사역을 생각하면서 애를 태우신 것에 비하면,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 3 ) 20년 후, 예수님은 빌라도 법정에서 유죄선고를 받고, 십자가형을 당하시러, 예루살렘 성을 나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예루살렘의 낯익은 여인들이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착하신 예수님께서 너무도 안돼 보여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그냥 지나치시지 않고, 잠시 걸음을 멈추어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여인들이여, 나를 위해 울지 마시오,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들이 당할 일을 위해 우시오”(눅 23:28) 라고 하셨습니다.
사순절에 우리는 수난 당하시는 예수님의 고통을 많이 묵상합니다. 하지만 더욱 묵상할 일은 우리 자신과 우리들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당할 운명을 생각하면서, 울도록 하십시다.
<기도> 주 하나님, 이 사순절에 예수님의 수난이 불쌍해서만 우는 일은 없게 하옵소서. 저희와 저희의 자녀들이 당할 고난을 대신 당하시는 사실을 더욱 깊이 생각하고, 철저한 회개와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