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만도 1과 } 데살로니카전서 2장 8 – 15절 …. [8] 어느 예배소에서나 남자들이 성을 내거나 다투거나 하는 일이 없이 깨끗한 손을 쳐들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9] 그리고 여자들은 정숙하고 단정한 옷차림을 해야 합니다. 머리를 지나치게 꾸미거나 금이나 진주로 치장을 하거나 비싼 옷을 입지 말고 [10] 오직 착한 행실로써 단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을 공경한다는 여자에게 어울립니다. [11] 여자는 조용히 복종하는 가운데 배워야 합니다. [12] 나는 여자가 남을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침묵을 지켜야 합니다. [13] 먼저 아담이 창조되었고 하와는 그 다음에 창조된 것입니다. [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하와가 속아서 죄에 빠진 것입니다. [15] 그러나 여자가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믿음과 사랑과 순결로써 단정한 생활을 계속하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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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 가 )> 위의 본문에는 “여자는 (교회에서) 침묵을 지켜야 합니다”(본문 12하반절) 라는 말씀이 눈에 크게 뜨입니다. 이 말씀 때문에 성경이, 또는 사도 바울이 성차별을 한다는 말을 듣게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단락을 세심히 읽어보면, 여성에 관해 주의를 주는 말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에 대한 말씀도 명확하게 들어 있습니다. “어느 예배소(* 교회)에서나 남자들이 성을 내거나 다투거나 하는 일이 없기를”(본문 8절)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단락은, 교회에서 남-녀 교인들이 피차에 조심해야 할 일반적인 사항을 지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남자 교인들의 큰 폐단인, 곧잘 화를 내고 서로 다투는 일이 없어야 교회가 교회 구실을 할 것이라는 호소였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하다가도 서로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다툰다면 일을 벌이지 않았으니만 못한 결과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여성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킨 내용은, 여성들은 말조심을 해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말 조심은 남자도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남자들이 성을 잘 내는 것이 여성보다 약점이듯이, 여성에게서는 말조심을 안 하는 것이 약점이라는 뜻으로 한 말씀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성을 내지 말아야 할 일이나, 말 조심을 해야 하는 것이 남,녀 공히 애써야 할 일이지 어느 쪽이 더하고 어느 쪽이 덜하다 따질 문제가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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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세계교회가 기념하는 믿음의 선배 } 시에나의 캐터린 (Catherine of Siena, 1347 – 1380)
캐터린은 이탈리아 중부 산악지대의 시에나라는 고장에서 염색공 집안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스물다섯 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마지막에서 두번째로 태어난 아기가 캐터린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경건하게 생활하면서 자라,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단 한 가지 만은 부모의 뜻을 거역했습니다. 그것은 수도자의 소명 때문에 시집을 가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열여덟 살에 캐터린은 도미니칸 수도회에 들어가서 기도생활과 신비체험의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을 돌보는 일로 바빴습니다.
그녀는 일반적인 수도자들은 흘려보내는 교회의 제반 행정문제들, 또 사회정치적인 이슈들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는 적극적인 수도자였습니다.
1376년에 교황 그레고리 11세가, 정치적 상황에 시달려, 교황이 마땅히 지키고 있어야 할 교황청의 자리(로마)를 떠나 프랑스 아비뇽으로 피신하여 머물고 있었습니다. 캐터린은 용기를 내어 교황에게 가서, 로마로 귀환할 것을 충고했고, 이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이루려고 분망한 때를 보낸 일도 있었습니다.
그레고리 교황이 별세한 후, 우르반 6세가 교황이 되었는데 그도 캐터린의 도움을 청할 정도로 캐터린은 젊은 나이에 영적 지도력이 대단했습니다. 캐터린의 영적 감각도 빼어났지만, 그가 수녀임에도 교황들이 어린 그녀의 충고를 받아들였다는 점도 존경받을 만합니다.
만약 그녀가 여성이어서 교회에서 할 말을 하지 않고 조용했다면,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33세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교황청을 바로잡는 일을 위해, 그리고 교회들을 위해 그의 섬김이 극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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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신 차용 } 사도행전 13장 1-5절 …. [1] 그 때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와 교사 몇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르나바와 니게르라고 불리는 시므온과 키레네 사람 루기오와 영주 헤로데와 함께 자라난 마나엔과 사울(* 바울)이었다. [2] 그들이 단식을 하며 주님께 예배 드리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바르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라. 내가 그들에게 맡기기로 정해 놓은 일이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3] 그래서 그들은 다시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나서 그들에게 안수를 해주고 떠나보냈다. [4] 바르나바와 사울은 성령께서 보내시는 대로 셀류기아로 내려가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 섬으로 건너갔다. [5] 그들은 살라미스에 이르러 유다인의 여러 회당에 들러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였다. 그 때 요한 마르코도 그들을 따라다니며 일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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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 나 )> 안티오키아 교회는 해외선교의 필요성에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러나 누구를 선교를 위해 보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해답이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지도자 다섯 명과 함께 <단식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다섯 지도자들 가운데 두 사람을 천거하셨는데, 바나바와 사울(* 바울)이었습니다. 물론 안티오키아 교회의 유지-발전을 위해서 누가 교회를 지키고, 누가 해외선교사로 파송되어야 할 것인가가 인간적인 토의로는 해답을 얻기 힘든 문제여서, 그들은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얻은 응답은 ‘그들의 교회 유지-발전에 가장 필요한 두 사람을 뽑아 그들을 선교사로 파송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왜입니까? 하느님의 일 가운데 가장 힘든 일이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최고의 인력을 뽑아 해외파송선교사 일을 맡기는 것이 최우선적인 것이고, 교회 재정 가운데 가장 최우선적으로 배정해야 할 항목이 해외선교이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와는 반대 방향으로 인력이 배치되고, 재정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부인할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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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느님, 저희 각자에게 은사를 허락하여 주셨사오니, 그 은사들을 가지고 언제 어디서든 주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를 힘껏 섬기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