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

<사도 빌립과 야고보의 날> ……….. (성경전서 새번역)

{ 복음 } 요한복음서 14장 1-14절 ….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고 너희에게 말했겠느냐?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3] 내가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나에게로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도마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이제 너희는 내 아버지를 알고 있으며, 그분을 이미 보았다.”

[8] 빌립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좋겠습니다.” [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네가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 이것은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다. [14]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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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 1 ) 베드로가 어떻게 구원의 백성이 되었고, 주님의 사도가 되었는가를 설명하려면,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단연코 베드로입니다. 바울이 어떻게 구원의 백성이 되었고, 주님의 사도가 되었는가를 설명하려 해도,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울입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 하나 하나가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었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았는지를 이야기하려면,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빌립을 말할 때에는 빌립이, 야고보를 말할 때에는 야고보가, 김아무, 이아무, 박아무가 각각 주인공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엑스트라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는 엑스트라 가운데 엑스트라로 살았을는지 모릅니다. 군중 속에 점 하나 처럼 이 세상을 평생 살았을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에서는, 단연코 우리가 모두 주인공들입니다.

( 2 ) 빌립의 이름이 역사에 남아 있는 것은 요한복음 때문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4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공생애 초기에 갈릴리로 떠나시려다, 빌립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립을 만났을 때에, 한 눈에 그를 알아보시고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빌립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셨는지는 저도 모르고 여러분도 모릅니다. 후일에 하늘나라에서 만난다면 물어서 알 수 있을 겁니다.

빌립은 그후 대뜸 나다나엘에게 가서 ‘내가 메시아를 만나고 오는 길이요. 그분은 나사렛 사람이었소.’ 라고 했습니다. 나다나엘은 즉석에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가 있겠소?”(요 1:46)라며 부정적인 말을 했습니다. 이때 빌립은 “와서 보시오.” 라고 말했지요? ‘당신도 만나 보면 그가 메시아인 줄 알게 될 것이오.’ 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다나엘도 주님의 제자가 되었고, 제자 명단(마 10:3)에 ‘바돌로매’로 기록된 제자가 바로 그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장차 하늘나라에 먼저 가실 일을 말씀하실 때에, 제자들이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묻는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거기 먼저 등장했던 제자가 도마였고, 그 다음이 빌립이었습니다.(요 14:5, 8)

빌립의 질문의 요지가 ‘주님, 하나님을 저희에게 좀 보여 주십시오.’ 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인간들의 궁극적인 질문을, 빌립이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께 여쭙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눈으로 확실하게 좀 보여 주셔서 다시는 의심치 말게 도와 주십시오.’ 라는 뜻이 아니었겠습니까?

이때 주님께서 대답하신 것이 “나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것이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다만 예수님을 통해서라면, 눈으로 뵙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데, 무엇을 더 보자고 조르는 것이냐, 하는 말씀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과의 이런 모처럼의 대화의 주인공이 빌립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그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었던, 장정 만도 5천 명이나 되는 큰 군중이 어린이가 지녔던 도시락 하나로 배 부르게 먹었던 사건의 현장에 빌립이 있었다는 기록(요 6:5-8)이라든지, 이방 나라 그리스로부터 예루살렘을 예방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뵙고자 찾아왔을 때, 빌립이 그 안내를 맡았던 기록(요 12:21-22)이 복음서에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승천 이후에 빌립이 어떻게 사도로서의 일을 했는지는 성서 외적 자료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는 튀르키예의 서북부 지방에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히에라폴리스에서 순교했고, 그의 딸들과 함께 묻혀 있다고 합니다.

과연 고귀한 역사 속에 주인공 다운 삶이었습니다. 교회는 그를 매년 5월 1일에 기념하고 있습니다.

( 3 ) 사도 야고보에 관해서는, 다만 그가 ‘알패오의 아들’이라는 사실 뿐입니다.(마 10:3) 그리고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야고보’ 라는 이름의 제자가 두 명이어서, 세배대의 아들이며 요한의 형이었던 야고보는 ‘큰 야고보’라고 부르는 데 반해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작은 야고보’라고 통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키의 작고 큼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할이나, 임무의 비중이 크고 작음을 나타낸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서두에서 가룟 유다를 제외한 열한 명의 제자들이 모여, 사도들, 곧 주님의 부활을 증언할 사람의 완전수 열두 명을 채우기 위해 맛디아를 선택했던 점으로 보아, 야고보를 포함한 그들 모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뵌 이들이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행 1: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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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인간적으로 볼 때에는 부족하기가 이를 데 없어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맥락에서 볼 때에는 저희의 미미한 몸짓 하나라도, 구원의 복음이 전해지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면, 저희는 하늘나라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성령님, 저희로 하여금 이 영광스러운 배역을 잘 감당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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