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의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만도 2과 } 마태오 복음서 7장 7-11절 …. [7]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8]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9] 너희 중에 아들이 빵을 달라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 [10]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1] 너희는 악하면서도 자기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 서신 } 디모테오 후서 1장 4-5절 …. [4] 나는 그대가 눈물을 흘리던 일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대를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만나게 되면 내 기쁨은 더할 나위 없이 클 것입니다. [5] 나는 그대의 거짓 없는 믿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은 먼저 그대의 할머니 로이스와 또 어머니 유니게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도 지금 그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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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 1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 아버지의 나라가 …(이하 생략)”(마 6:9 이하)
아버지를 좋은 아버지로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을 다분히 좋은 분으로 인식할 터이지만, 아버지를 폭군이거나 불성실한 존재로 경험한 이들에게는, 하느님을 못 믿을 존재로 인식할 가능성이 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악하면서도 자기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불성실하게 사는 아버지일지라도, 자기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베푸는 인간들을 관찰하신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모양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아버지 어머니를 경험하면서,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섭리자이시고, 만유를 통치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는 하느님의 그림자 같은 존재라고 말할 수가 있겠지요.
아버지와 어머니로 세상을 살고 계신 여러분, 자녀들이 하느님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도록 거룩하고, 의롭고, 자애롭고, 성실하게 살기를 힘씁시다. 저는 그런 아버지가 못되면서, 여러분 앞에 ‘바람 풍’을 ‘바담 풍’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있어, 거북스럽습니다.
( 2 ) 사도 바울로가 디모테오를 자기 친자식처럼 사랑했음을 우리는 압니다. 디모테오의 인간성을 좋아한 것이 아니라, 그의 믿음을 좋아했습니다.
디모테오의 할머니와 어머니는 유대인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희랍인이었지요. 그래서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그의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를 통해서 유대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가, 바울로의 제2차 선교여행 때 리스트라 지방에서 기독교 신앙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행 16:1-5)
그의 순결한 믿음과, 눈물로서 회개하고 눈물로서 감사하던 모습을 바울로가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로는 디모테오를 ‘나의 참된 아들’(딤전 1:2, 딤후 1:2)이라고 부르기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복된 교회 풍습 하나가 세례 받는 사람의 보증인이 되는 제도입니다. 보증인은 세례 받는 이를 위하여 평생 대도(중보기도)를 드리는 기쁜 의무를 지닙니다. 의식주를 책임지는 것이 아니고, 다만 믿음을 지키도록 대도를 바치는 ‘영적 어버이’로서의 책임을 집니다. 이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야말로, 중대한 책임이니만치, 성실히 감당하도록 애씁시다.
( 3 ) 오늘 세계교회가 기념하는 영적 어머니 ‘노리치의 쥴리안’ (Julian of Norwich, 1373 – 1417)을 소개합니다.
그녀가 30 세 때에, 무슨 병인지 몰라도, 시한부 질병에 걸렸습니다. 당시에 흑사병이 창궐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병명이 흑사병이었다는 확실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녀는 열 여섯 번에 걸쳐 하느님의 임재와 신비로운 힘에 이끌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그녀는 한 두메 산골 교회의 부속실에서 기거하면서, 약 20년간 은둔자로 지내며, 그곳에서 신앙상담을 바라서 방문하는 이들을 고해소에서 만나는 일을 했습니다.
그녀는 하느님을 ‘어머니’로 부르기를 즐겼습니다. 이 때가 주후 1400년을 전후한 때여서, 그의 탁월한 신학적 관점이 오늘날에 와서야 돋보이고 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괜찮습니다. 모든 것이 잘 해결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라는 말로 늘 격려하곤 했습니다. 비록 큰 죄를 범한 사람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주곤 했습니다. “자녀를 포기하는 어머니가 없듯이, 하느님은 당신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 다가가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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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느님, 저희에게 부모를 경험하게 하셔서 하느님을 미루어 깨닫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또 저희가 아들 딸들의 부모가 되어 하느님의 심정을 조금치나마 깨닫게 하셔서 감사드립니다. 저희로 하여금 육신의 부모-자식간의 관계를 성실히 지키는 동안, 하느님의 신실한 자녀로 사는 도리도 함께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