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 없는 양떼에 대한 대책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성경전서 새번역)

{ 복음 } 마태복음서 9장 35-38절 …. [35] 예수께서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유대 사람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며,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온갖 질병과 온갖 아픔을 고쳐 주셨다. [36]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은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에 지쳐서 기운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38] 그러므로 너희는 추수하는 주인에게 일꾼들을 그의 추수밭으로 보내시라고 청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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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구세주로 세상에 내리신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사시는 동안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사람을 만날 때에, 그들의 학식이나 성격, 또는 관심 거리가 무엇인지를 관찰합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가 만나는 사람이 입은 옷에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아예 모든 인간들을 거짓말쟁이 사깃꾼으로 보고, ‘무슨 거짓말을 하려고 내게 왔나’ 하는 눈으로 관찰을 합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학식이나 성격, 옷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관심은, 사람들의 영혼이 지금 무엇에 묶이어 종노릇을 하고 있는가에 있었습니다. 어느 누구든지 모두 구원하시기를 바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들을 관찰하신 예수님의 결론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목자 없는 양떼” 라는 것.

어떤 이들은 인생이 무의미하다고 절망하고 있고,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된 채 외로움에 지쳐서 살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불안과 우울증이나 여러 가지 두려움 속에서 내일에 대한 소망을 가지지 못하고, 어떤 이들은 전쟁이나 기아, 그리고 박해 가운데 언제 닥칠지 모르는 치명적 위협 앞에 떨며 살고 있고, 어떤 이들은 겉모양으로는 신앙생활을 하는 듯이 보이지만,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친교가 이루어지지 못한 이들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상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양새를 보신 인상을 말씀하시기를, ‘목자 없는 양’들 뿐이라 하신 것입니다.

유대 사람들이 유목민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주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금방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죽음의 위협이 따르고 있으며, 악령의 손에 언제든 놀아날 수 있는 운명을 지닌 존재가 되어 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래서 ‘대목자장’ 이신 예수님께서는 ‘소목자’ 에 해당하는 ‘추수꾼’의 필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그저 막연한 제안이 아니라, 안타까운 요청이셨습니다. ‘나와 더불어 이 목자 없는 양들을 챙겨줄 자원자가 없느냐?’는 호소를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추수꾼’(전도자)의 자격은, 목자 없는 양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만 있으면 되었습니다. 추수꾼이라면 추수밭으로 들어가야 하듯이, 소목자인 전도자들은 사람들의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추수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수확의 수량이 컸다고 자랑할 일도 아니고 적다고 낙심할 일도 아닙니다. 다만 한 사람이라도, 내가 그를 위해 기도하고, ‘낫’(말씀)을 대어 추수밭에서 거두었다면, 그것으로 주님의 기쁨이 되고, 내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추수꾼을 보내 달라고 추수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간구하라(본문 38절 참조)는 말씀은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추수꾼을 보내 달라’ 는 기도에서 우리들의 마음 속에 ‘목자 없는 양’에 대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작동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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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세계 도처에서 목자 없이 ‘매애, 매애’ 하며 불안에 떨고 있는 양무리들을 애처로운 눈으로 보시고 계시는 하나님, 비옵나니, 저희도 똑같은 양무리로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저희를 목자의 대역, 곧 ‘추수할 일꾼’으로 양무리들에게 보내 주시옵소서. 갈 길을 잃은 양무리들을 돌보게 하시며,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모든 사람들이 인도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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