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 구약 본문 } 욥기 19장 21-27절 …. [21] 벗들이여, 불쌍하고 가련하지 아니한가? 하느님의 손이 나를 치셨는데 [22] 어찌하여 자네들마저 하느님처럼 나를 구박하는가? 그만큼 헐뜯었으면 직성이 풀릴 만도 하지 않은가? [23] 아, 누가 있어 나의 말을 기록해 두랴? 누가 있어 구리판에 새겨두랴? [24] 쇠나 놋정으로 바위에 새겨 길이길이 보존해 주랴? [25] 나는 믿는다. 나의 변호인이 살아 있음을! 나의 후견인이 마침내 땅 위에 나타나리라. [26] 나의 살갗이 뭉그러져 이 살이 질크러진 후에라도 [27] 나는 하느님을 뵙고야 말리라. 나는 기어이 이 두 눈으로 뵙고야 말리라. 내 쪽으로 돌아서신 그를 뵙고야 말리라.. (이하 생략)
~~~~~
<( 말씀 묵상 )> ( 1 ) 욥기에서 가장 사랑받는 요절이 오늘의 본문 25-27절입니다. “나는 믿는다. 나의 변호인이 살아 있음을! 나의 후견인이 마침내 땅 위에 나타나리라. 나의 살갗이 뭉그러져 이 살이 질크러진 후에라도 나는 하느님을 뵙고야 말리라. 나는 기어이 이 두 눈으로 뵙고야 말리라. 내 쪽으로 돌아서신 그를 뵙고야 말리라.” 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신앙고백이며, 혼신을 다 바친 기도입니까?
욥은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가산을 모두 잃었고, 멀쩡하던 자식들이 모두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욥은 건강까지 잃어서 온 몸이 성한 데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몰락한 욥의 신세를 바라보던 그의 아내마저 이제 소망이 끊긴 욥을 버리고 떠나 버립니다.
평소에 사귀던 친구라는 작자들이 모여들어 욥을 위로한답시고, 이런저런 인생철학을 늘어놓지만, 믿음의 사람인 욥의 마음에는 달갑지 않은 위로의 언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되지못한 사설들을 듣다 못한 욥이, 믿음없는 친구들 앞에서 당당히 자신의 확고부동한 신앙적 선언을 합니다. ‘나의 변호인이 살아 계심을 확신한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변호인’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기업을 무를 자’라는 뜻으로도 쓰이는 히브리어 단어 ‘고엘’입니다.
가령 룻기에서 룻의 기업을 무를 자로 보아스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의 역할이 ‘고엘’입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실 분이 ‘고엘’인 하느님이시고, 신약성서에서 인류를 구원하실 분으로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이 ‘고엘’인 구세주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욥의 선언은 구세주 예수님께서 우리 인류를 구원하실 분이심을 믿는 신앙을 선언한 것입니다.
더구나 욥이 말하기를, “나의 살갗이 뭉그러져 이 살이 질크러진 후에라도 나는 하느님을 뵙고야 말리라.”(26 – 27절)고 말하는데 이것은 행악자들에게 죽임을 당해, 몸이 산산히 부서져 해체되는 날이 오더라도, 내 영혼의 눈이 주님을 뵙게 되리라는 절규인 것입니다.
이 얼마나 굳센 믿음입니까?
~~~~~
( 2 ) 오늘도 세계교회는 이런 굳센 믿음으로 살던 옛 믿음의 선배들을 기념합니다.
가. 그레고리 (Gregory of Armenia, ? – 332?) : 아르메니아의 주교였던 그는 아르메니아의 왕 타리다테스 3세의 모진 박해 때에 체포되어, 13년 가량 투옥 당해 있었습니다.
왕이 위중한 병에 걸려, 왕의 누이 코스로비두흐트가 옥에 갇혀 있는 그레고리의 기도를 받으면 나을 것이라는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그레고리를 옥에서 불러내어 병이 낫도록 기도하라고 했답니다.
그레고리가 기도를 시작하면서 점차 왕의 병이 물러가게 되어, 왕은 아르메니아의 국교를 기독교로 선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레고리는 왕궁에 머물지 않고 전국을 다니며 교회를 세우고 성직자를 양성하는 일로 여생을 보냈습니다.
나. 앤토니 쿠퍼 (Anthony Ashley Cooper, 1801 – 1885) 백작 : 그는 성직자도 아니고 신학자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평범한 신자였고, 정치가였으며, 사회변혁에 깊이 기여한 이였습니다.
그는 영국성공회 안에서도 복음주의 계열의 세계선교회(Church Mission Society)를 지지했으며, 그 회장직을 맡았습니다.
공장에서 값싼 임금을 주면서 어린이들을 장시간 혹사하는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법제화 운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광산노동자들 가운데 여성과 어린이들을 막장에 내려보내는 일을 금지하기 위해 역시 법제화 운동에 힘썼습니다.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워 40년 동안에 약 30만 명 가량의 어린이들에게 교육의 혜택을 받게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또한 정신질환자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게 규정을 세웠고, 쇠사슬로 묶는 일을 금지시켰습니다.
진정 그는 세상에 보내진 천사처럼, 그릇된 관습으로 비인간적 처우를 받고 있던 많은 약자들의 묶임을 풀어주고 인간 다운 대우를 받도록 평생을 힘썼습니다.
다. 리외의 데레사( Therese of Lisieux, 1873 – 1897) 수녀 : 그녀는 24세 밖에 세상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크게 영향을 주고 갔습니다.
그녀가 생각한 것은 ‘대단치 않은 것’에 관한 사랑의 마음이었습니다. 15세에 가르멜수도원에 입회해서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9년 반을 살았습니다. 그녀의 일상은 다른 수녀들과 마찬가지로, 기도하고, 예배에 참여하고, 빨래하고, 식사하고, 청소하고, 공동체의 다른 수녀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영성은 이런 평범한 일 속에 있었습니다. 폐쇄수녀원에 살기 때문에 큰 일이라고는 할 짬도 없었습니다마는, ‘작은 일을 사랑으로’ 행했습니다. 자기를 불편하게 하는 수녀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일을 자기가 솔선해서 하는 것, 자기에게 돌아올 칭찬을 피하는 것, 작은 불편을 불평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 이런 평범한 일들을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고린도전서 12-13장을 깊게 묵상했습니다. 많은 은사들이 있지만 가장 큰 은사는 사랑이라는 것, 모쪼록 사랑의 은사를 구하라는 권유(고전 12:31)를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녀는 폐결핵에 걸려, 급속도로 체력이 감퇴되면서, 신앙마저 잃는 위기를 경험하면서 ‘어둠의 계절‘를 보낸다는 정직한 자서전적 기록을 남기다가, 그녀의 마지막 말 “나의 하나님이시여,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1897년 9월 30일 숨을 거두었습니다.
~~~~~
<기도> 주 하느님, 보잘것없는 피조물인 저희 인간들이 길게 살건 짧게 살건 저희 영혼에 하느님을 모시고 살게 하옵소서. 비오니, ‘나의 사랑, 나의 하느님’을 하느님의 집 뜰에서 날마다 뵙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며 살도록, 성령이여 저희를 인도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