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오늘의 복음 본문 } 루카 복음서 10장 13-16절 …. [13] 불행하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기적을 티로와 시돈에 행했다면, 그들은 벌써 자루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했을 것이다. [14] 그러니 심판 때 티로와 시돈이 너희들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15]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오를 성싶으냐?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16] 너희의 말을 듣는 사람은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무리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무리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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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 1 ) 벳사이다나 카파르나움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은 복음서에 더러 기록되어 있지만, 코라진에서 행하신 일은 복음서에 기록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코라진을 딱 집어서 회개하지 않았음을 지적하신 것은 그만큼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고, ‘구원의 복음’ 말씀에 냉담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카파르나움은 예수님의 공생애에 가장 자주 들리셨고, 그곳을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의 출발지요, 센터로 여기셨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 주민들의 반응은 시들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개탄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 도시들에서 행한 기적들을 티로와 시돈 같은 이방나라 도시에서 행했더라면, 그들 도시에서 벌써 크게 회개가 일어났을 것이고, ‘하나님 나라’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으리라.’ 고 탄식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일으키신 일을 한 마디로 한다면, 그것은 ‘회개운동’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돌이켜 회개하면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드리는 일이 곳곳에서 크게 일어나, 새로운 삶들이 전개되고, 진정 괄목할 만한 세상이 점차로 되어가는 것을 바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회개는 여리고 성의 사캐오라든지 베다니 마을의 라자로와 그의 누이들, 수가성의 우물가에서 만난 한 사마리아 여인 같은 몇 사람에게서만 일어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냉담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이렇게 푸대접 받을 것을 모르시지는 않았지만, 참으로 현실적으로 당하는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슬플 수 밖에는 없으셨습니다.
( 2 ) 저는 어려서부터 복음을 들을 기회가 많았습니다. 평생 성경 가까이에서 살았고, 말씀을 배우고 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전쟁과 억압의 시대를 지나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제게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고, 여러 나라의 교회들을 다니며 넓은 신앙의 세계를 볼 기회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는 제게 물으십니다. “그렇게 많이 듣고 보았는데, 너는 얼마나 회개하고 변화되었느냐?” 라고 말입니다.
생각해 보니, 말씀을 많이 들었다는 것과 말씀에 순종했다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신학을 배웠다는 것과 내 생각을 주님의 생각 앞에 굴복시키는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받은 많은 기회들이 제 자랑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제가 벌을 받을 소재로’ 작용하게 될 것을 생각하면서, 두려운 마음 뿐입니다. 은혜를 많이 받았다는 것 역시 회개의 권고를 많이 받았다는 것을 의미할 텐데, 저에게는 변화된 것이 그리 없음을 자성하며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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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다른 사람의 회개를 말하기 전에 제가 먼저 매일 회개하게 하옵소서. 수없이 들었던 말씀들이 제게 너무도 익숙해질 뿐, 마음 속에서 굳어져버리지 말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제가 받은 은혜의 크기를 자랑하기보다, 그 은혜에 합당한 열매가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보게 하옵소서. 간절히 비오니, 다른 사람에게는 버릴 것과 변화를 요구하면서도 제 자신에게는 면제하고 마는 일은 범하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