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이 중요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 서신 } 갈라디아 5장 2-6절 ….[2] 나 바울로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할례를 받는다면 그리스도가 여러분에게 아무런 이익도 되지 못할 것입니다. [3] 할례를 받는 모든 사람에게 다시 강조합니다. 할례를 받는 사람은 율법 전체를 지킬 의무를 지는 것입니다. [4] 율법을 지킴으로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려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관계가 끊어졌고 은총에서 벗어났습니다. [5]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6]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할례를 받았다든지 받지 않았다든지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만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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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유대인의 전통으로 할례(포경수술)는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예식이었습니다. 할례를 하면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고, 할례를 안하면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인정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전통의 내력은 창세기 17장 9-1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 시대에 하느님의 명령으로 할례가 시작되어, 아흔아홉 살의 아브라함과 온 남자 식구들이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다시 모세의 율법(레 12:3)에 편입되어,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언약의 표징’이 율법으로 명문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할례의 기원이 모세를 통해서가 아니라 조상들의 풍습에 의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할례법은 모세가 정한 것이 아니라 옛 선조에게서 비롯된 것이다.”(요한 7:22-23)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단언합니다. ‘할례보다 믿음이 먼저’였음을 로마서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기 전에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롬 4:11) 할례로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할례받기 전에 보여준, 믿음을 본받아 사는’ 삶이 거룩한 백성이 되는 증거라고 부언했습니다.(롬 4:12)

오늘의 서신본문이 이것을 다시 정리하여 알려줍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할례를 받았다든지 받지 않았다든지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만이 중요합니다.”(본문 6절)

그냥 ‘믿음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고,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 만이 중요하다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음이 사랑으로 표현되는 것이라는 뜻인데 그러면 믿음은 영적인 것, 곧 내면적 요소가 아니고, ‘사랑’이라는 외면적 요소라는 뜻입니까?

그래서 성경주석학이 필요하게 됩니다.

– 헬라어로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 이라는 본문이 “pistis di’ agapes energoumene’ 라고 했습니다.

– ‘pistis’는 믿음, 신뢰, 신실함, 충성이라는 뜻인데, 하느님과 인격적 신뢰를 이루는 관계를 말합니다.

– “di’ agapes”에서 ‘di’는 ‘dia’(통해서)의 축약형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매개로 하여’ 또는 ‘사랑을 통하여’라는 뜻이 됩니다. 즉 믿음과 사랑이 동격이 아니라, 믿음이 작용하는 통로의 하나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 ‘energoumene’는 ‘작용하는’ 또는 ‘활동하는’, 또는 ‘어떤 결과를 이루어내는’, 이런 뜻이 됩니다.

그래서 이것을 한 데 모아 직역하면, ‘사랑을 통하여 활동하는 믿음’, 또는 ‘사랑을 통하여 효력을 발휘하게 되는 믿음’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저 편하게 정리하면, ‘사랑을 통하여 작용하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것은 실천적 신앙을 강조했던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야고보 2:17) 는 말씀과 맥이 통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실천을 강조하는 야고보서나, 믿음을 강조하는 바울로의 편지들에서나, 궁극적으로 서로의 일치함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가 자기의 골육 롯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하느님께 드리던 사랑에서 표현되었고, <룻>의 믿음은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어머님의 겨레가 내 겨레”라며 굳이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까지 따라간 사랑의 행위에서 표현되었고, 신약에서 화해의 사도인 <바나바>의 믿음은, 예루살렘 교회와 신참 사도 바울로와의 일치를 위하여 의심의 너울을 벗겨낸 그의 행동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믿음’은 추상명사 중에도 추상명사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실상’은 ‘사랑의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세상에서 수없이 증거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믿음이 우리들의 사랑을 통하여 표현되기를 기도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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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느님, 저희의 믿음이 저희의 입으로 신경을 외우는 데에 머물지 않고, 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좇아 사랑을 통하여 표현되는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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